누구는 연애를 글로 배웠다고 하고, 누구는 애교를 글로 배웠다고 한다. 그게 가능할까 싶기도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도 글로 배운 요리가 있다. 배움의 시작이 관심이라면, 단언컨대 난 한식(韓食)을 ‘혀’가 아닌 ‘글’로 배웠다.
한식을 글로 배우게 된 데는 다 이유가 있으니 너무 의아해하진 마시길. 15살에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20살에 요리를 시작했다. 내게 한식은 어릴 적 기억에 기댄 아주 간단한 가정식일 뿐이었고, 서양음식은 매일 생각하고 만들고 먹는 삶의 일부였다.
내가 한식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무심결에 읽은 책 덕분이었다. 당연히 흔해빠진 요리책은 아니다. 어머니는 외국에 살더라도 한국사람이라면 한글과 한국사를 잊어선 안 된다며 매달 3권 정도 책을 보내주셨다. 그 덕에 까막눈 소리 안 듣고 글줄이나 쓸 수 있게 됐다. 그 책들 중 내게 한식의 매력을 깨우쳐 준 책은 고 이규태 기자의 책들이었다. ‘배짱의 한국학’ ‘배꼽의 한국학’ ‘신바람의 한국학’ 등은 저자가 1980년대 후반에 쓴 칼럼들을 엮은 책인데, 저자가 생전에 경험한, 우리가 쉽게 접하기 힘든 한국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미식가로 잘 알려진 저자는 적잖은 내용을 한국의 음식과 식재료, 한국인의 식성 등 먹을거리에 대한 것으로 채웠다.
예를 들면 돼지가 그냥 먹으면 내장이 녹는다는 토하 젓갈(민물새우로 만든 젓갈)에 관한 이야기, 소설 ‘대지’의 저자인 펄 벅 여사가 한국에 왔을 때 무채를 써는 동네 할머니들의 정교함을 보고 놀랐다는 이야기, 홍어가 만들어지는 과정, 지방마다 각기 다른 김치를 담가 먹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등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러면서 실제로 한식을 만들고 맛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이를테면 수박 향이 난다는 섬진강 은어로 요리를 해보고 싶었고, 임진강의 달디단 참게로 스튜를 끓여보고 싶었고, 제주 향토음식인 애저회를 맛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먹어보고 만들어보고 공부했다. 한식에 대한 공부는 현재진행형이다. 만약 내가 그 책들을 읽지 않았다면, 난 여전히 ‘한식은 밥과 국과 밑반찬으로 구성된 가정식’이라고 생각하는 한식 문외한으로 머물렀을 수도 있다.
공자왈 맹자왈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책을 많이 읽으라는 얘기는 모두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다. 특히 새내기 요리사들에겐 요리책만 읽지 말고 다양한 책을 두루 읽으라고 권한다. 그래야만 더 나은 요리사,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와인공부를 위해 와인을 마시고 와인 전문 책을 찾아보고 와인에 대해 토론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페트로니우스의 ‘사티리콘’을 읽으면 로마 황제 네로가 하프를 켜며 불타는 로마시내를 내려다 볼 때 마셨다는 와인에 대해 찾아보고 이야기해 보면 와인에 대한 시각을 훨씬 넓힐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뿐만 아니다. 삼국지를 읽으면 제갈공명이 만두를 만든 유래를 알 수 있고, 러시아 동화집을 읽으면 이반 왕자가 먹는 치즈와 까마귀 고기에 대해 알 수 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 나오는 러시아 민간 요리 ‘카샤’라는 죽을 통해 러시아 음식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될 수도 있고, 소설 ‘작은 아씨들’ 속 만찬에 나오는 소 혓바닥 요리에서 ‘우설(牛舌)’이 얼마나 귀한 식재료인지 알 수 있다.
어린 요리사들이 내게 종종 묻곤 한다. 요리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요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은 이미 한 것 같다. 책 속에 길이 있다.
요리사
레이먼 김 '포스트 Eat' ▶ 시리즈 보기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