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메르스 진화를 위해 17일까지 정부대책본부와 병원, 학교 등 모두 열 곳의 현장을 방문했다. 박 대통령이 이처럼 부지런히 발품을 들였는데도 “대통령의 얘기를 듣고 안심했다”, “이제 정부를 믿을 수 있게 됐다” 같은 반응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청와대가 메시지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 크다.
온종일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주말엔 나들이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대통령에게 무슨 얘기를 듣고 싶어 하는지 청와대는 전혀 모르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이 메르스를 ‘중동 식 독감’이라 부르며 “너무 불안해할 필요 없다”고 달래거나 무능의 극치를 보여준 관료들을 향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방역관리를 철저히 하라”고 이른바 ‘유체이탈 화법’으로 지시를 내린 것만으로 메르스 공포를 다스릴 수 있다고 기대했다면 대단한 착각이다. 박 대통령이 14일 매출 급락 피해를 입은 서울 동대문 상점가를 방문한 뒤 ‘박 대통령이 현장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는 내용의 브리핑 자료를 따로 낸 것만 봐도 청와대의 딱한 현실인식을 짐작할 수 있다.
17일 정부의 메르스중앙관리대책본부와 국립보건연구원을 찾은 박 대통령의 핵심 메시지는 삼성서울병원 질타였다. 박 대통령은 ‘삼성서울병원’을 여덟 번이나 입에 올리면서 허술한 관리 책임을 물었고, “삼성서울병원이 잘 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되니 더 확실한 방역을 해 달라”고 주문했다.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은 박 대통령 앞에 두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이 장면은 당장 몇몇 국민을 시원하게 했을 수 있지만, 그 뿐이었다. 민심을 달래는 가장 확실한 처방은 박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인정하고 “정부가 앞으로 최선을 다할 테니 국민 여러분도 도와 달라”고 몸을 낮추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을 오래 보좌한 참모들은 “그런 보여주기 식 사과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메르스 레임덕’이라는 말이 오르내리고 대통령 지지도가 20%대로 내려 앉을 위기에 처했는데도 언제까지 스타일 타령만 할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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