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대중과 소통 '행동하는 교황' 프란치스코 배출
알림

대중과 소통 '행동하는 교황' 프란치스코 배출

입력
2015.06.18 04:40
0 0

귀족가문의 기사 출신 이냐시오, 청빈·겸손·융통성 수도회 구성

'출세하려 애쓰지 않겠다' 서약 전통, 이성적 신학 당시 교회에 새 바람

"세상에 투신" 성인 이냐시오 정신, 500여년간 면면히 이어져

만레사 동굴 경당 입구에는 형형한 눈빛의 예수회 설립자 이냐시오 성인 초상이 걸려 있다.
만레사 동굴 경당 입구에는 형형한 눈빛의 예수회 설립자 이냐시오 성인 초상이 걸려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첫 예수회 출신 교황이다. 예수회원들은 “교황이 명령하면 즉시 떠나야 하기에 한 발을 들고 산다”고 말할 정도로 적극적인데도 이제야 교황이 배출된 것은 오직 가난하고 상처받은 이들에 헌신해 온 탓이다. 최종 서원 직전 ‘고위직에 오르기 위해 애쓰지도, 야망을 품지도 않겠다’는 특별서약을 하는 것을 전통으로 삼을 정도다. 예수회 설립자인 성인 이냐시오(1491~1556년)의 도시 스페인 로욜라, 몬세라트, 만레사 지역을 찾아 청빈, 겸손, 융통성, 적극적 투신 등을 품은 예수회 영성의 근원을 살펴보았다.

부슬비가 대지를 적신 10일 도착한 스페인 북부 소도시 로욜라. 구름이 핀 산으로 둘러 쌓인 작은 마을에 이냐시오 생가와 기념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성인 이냐시오가 나고 자란 생가는 한눈에 봐도 위아래가 다르다.

로욜라에 보존돼 있는 이냐시오 성인 생가 앞에는 전쟁에서 부상을 당하고 돌아온 그의 모습이 조각으로 표현돼 있다.
로욜라에 보존돼 있는 이냐시오 성인 생가 앞에는 전쟁에서 부상을 당하고 돌아온 그의 모습이 조각으로 표현돼 있다.

하단은 창문 대신 사격구멍이 자리한 요새이고, 상단은 리본 무늬로 장식된 고급주택이다. 그는 로욜라성에서 귀족 집안의 막내 아들로 태어나 군사교육 등을 받으며 자랐다. 1517년 입대해 프랑스군과 교전 중 크게 다쳐 귀환했고 요양 중 성인전을 읽으며 급작스러운 마음의 울림을 겪었다. 전장의 기사로서의 열정이 자신을 황폐하게만 만들어 온데 반해, 모범을 따른 성인들의 삶에 전율을 느낀 것이다.

산간 마을에 자리한 이냐시오 성인 생가 및 기념성당 인근에는 영성센터가 마련돼 매년 수천명의 방문객이 영성과정을 수행한다.
산간 마을에 자리한 이냐시오 성인 생가 및 기념성당 인근에는 영성센터가 마련돼 매년 수천명의 방문객이 영성과정을 수행한다.

그가 사제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생가 내 ‘회심(回心)의 방’에는 미사를 올릴 수 있는 제단과 십자가가 마련돼 있다. 이 일대에서 예수회원 55명과 민간 봉사자 60여명이 이냐시오의 정신을 계승하는 삶을 산다. 평균 연령 82세다. 연간 방문객은 10만명 가량이다.

생가 및 기념 성당 총책임자인 아이노아 빌라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되던 날 예수회 모원(母院)인 이곳으로 언론의 눈이 몰려 모두가 흥분의 시간을 보냈다”며“가난한 이들을 위해 싸우고, 존재하는 모든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교황님의 정신에 많은 이들이 감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냐시오 성인 생가 및 기념성당 총책임자 아이노아 빌라씨
이냐시오 성인 생가 및 기념성당 총책임자 아이노아 빌라씨

교황 즉위 이후 방문객은 25% 늘었다. 교황은 막시모와 미구엘 신학대학 학장 신분으로 86년 91년 두 차례 이곳을 찾았다. 빌라씨는 “많은 분들이 이곳에서 묵상을 통해 우선 자기 스스로를 알고 찾고, 나 이외의 타인을 알고, 내가 세상에 나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깨닫는다”고 설명했다.

11년간의 공부 끝에 베네치아에서 사제품을 받은 그는 1534년 입신양명에 한눈을 파는 성직자를 비판하며 오로지 주님만을 섬기는 예수회를 구성했다. 수도원 밖에서 세상에 섞여 대중 속에서 그들의 언어로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사제도 인문과학, 자연과학을 배워야 하며 청빈, 겸손, 단순함, 융통성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화하는 세계를 직시하는 예수회의 이성적 신학은 가톨릭 교회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고, 종교에 회의적이던 르네상스 지식인들을 다시 교회로 불러왔다. 1545년 부패종식과 교회 쇄신을 모색하던 교황 바오로 3세도 주로 예수회의 의견을 경청했다.

11일에는 이냐시오가 수도한 만레사의 동굴 경당(소규모 성당)을 찾았다. 그는 1522년 인근 몬세라트 수도원에서 고해성사를 한 뒤 10㎡에 불과해 보이는 이곳 동굴에서 누더기를 걸친 채 11개월간 명상하며, 구걸로 생계를 꾸렸고 매일 써낸 기록을 바탕으로 대작 ‘영신수련’을 토해냈다.

이냐시오 성인이 포대로 만든 누더기 옷을 걸친 채 홀로 11개월간 기도하며 대작 ‘영성수련’의 기틀을 잡은 만레사 동굴 경당에는 그 청빈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냐시오 성인이 포대로 만든 누더기 옷을 걸친 채 홀로 11개월간 기도하며 대작 ‘영성수련’의 기틀을 잡은 만레사 동굴 경당에는 그 청빈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만레사 동굴 경당 책임자인 이사벨 소토씨는 “성인은 자신이 성모님께 장검을 바친 몬세라트 수도원이 내려다 보이는 이곳에서 세상을 보는 눈을 전환했다”며 “그 청빈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일 아침 7시 반에 미사를 올린다”고 말했다. 지난해 4만 4,000명이 이곳을 방문했다.

이냐시오가 이 작은 동굴을 나서 세상에 투신한 지 500여년 뒤, 그의 영성을 계승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를 향해 뜨겁게 당부하고 있다. “늘 문을 열어두십시오.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이 우리에게 올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살아야 합니다.”

로욜라 만레사(스페인)= 글ㆍ사진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