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발생 이후 방역 당국이 내세운 예측들이 번번히 빗나가고 있다. 우리와 환경여건이 다른 중동지역에서 작성된 발병 관련 통계를 바탕으로 적용한 가설이 대부분 어긋났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도 지난 달 첫 감염환자가 발생했을 당시 메르스의 전염성이 낮다는 기존 정보에 기초해 가볍게 처리하면서부터 비롯됐다. 당국이 뒤늦게나마 확산방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여전히 국민이 못미더워 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잘못된 전제 때문이다.
예기치 못한 슈퍼 전파자가 줄줄이 등장한 것이 가장 큰 변수였다. 많게는 한 명이 70명이 넘는 사람을 감염시켰다. 슈퍼 전파자들과 접촉한 환자 중에는 30분 이내의 짧은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보냈다는 이유로 감염됐다. 2m 이내에서 1시간 이상 밀접 접촉하지 않으면 감염될 우려가 없다는 당국의 가이드라인이 무색해졌다. 평소 면역력이 낮거나 기저질환이 없다면 감염돼도 사망할 가능성은 낮다는 당국의 주장과는 달리 사망자 20% 가량이 기저질환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건강한 젊은이는 감염되기 어렵고, 사망할 가능성은 더욱 낮다던 가설도 40대 사망자 발생으로 깨졌다. 보호장구를 갖추고 메르스 환자에 심폐소생술을 하던 간호사가 감염돼 마스크, 장갑 등 보호장구 만으로 예방할 수 있다는 전제도 재검토해야 할 판이다.
방역 당국이 그간 14일로 설정한 최대 잠복기간을 넘긴 환자들도 속출하고 있다. 길게는 19일만에 발병한 환자도 있다고 한다. 당국의 격리기간 기준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당국은 여전히 “잠복기 내에 증상이 나타났지만, 뒤늦게 증상 자각을 했거나 확진이 늦어진 것”이라며 14일 잠복기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중동지역 환자들의 임상 양상을 기반으로 설정한 가이드라인일 뿐 100% 신뢰를 보장하지는 못한다. 이미 다수의 예측이 빗나간 마당에 이를 고집해야 할 논리적 근거도 약하다. 더욱이 사우디아라비아 연구팀이 지난 해 메르스 최대 잠복기가 6주에 달한다는 새로운 연구결과까지 발표한 마당이다.
이번 사태로 사망자만 20명이 발생하고, 누적 격리자가 1만 명을 넘어서면서 사실상 국가의 통제권을 벗어나는 위기 상태로 전개됐다. 선제적 대응으로 병원을 서둘러 폐쇄하고, 환자와 접촉한 사람을 발 빠르게 찾아내 격리조치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크지만, 너무 늦었다. 지금부터라도 당국은 기존 임상 통계와 정보들에 대한 지나친 신뢰를 거두고 우리 상황들을 면밀하게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대처해야 같은 우를 범하는 잘못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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