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중화기·첨단 전투기 배치 등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 확대에 맞불
양측 국경 인근서 잇단 군사훈련도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중화기와 핵무기, 최신형 미사일을 경쟁적으로 배치하며 군비 경쟁에 나서고 있어 ‘신(新) 냉전’이 본격화하고 있다. 만에 하나 우크라이나나 동유럽에서 국지전이 발생할 경우 언제든지 미ㆍ러간의 전면전으로 비화할 위험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러시아, 미국에 맞서 군비 증강 나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6일 모스크바 인근 도시 쿠빈카에서 열린 국제군사기술포럼 ‘군-2015’에서 연설을 통해 “올해 안에 러시아 전략미사일군에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40기를 실전 배치할 것”이라며 “이 미사일은 기술적으로 가장 개량된 미사일 방어(MD) 시스템을 뚫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의 발언은 유럽 지역에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미국에 노골적인 적대감을 표출한 것으로 풀이된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합병에 위기감을 느낀 유럽 국가들은 안보면에서 미국에 의존을 강화하고 있다. 데보러 러 제임스 미 공군장관은 15일 프랑스 파리 에어쇼에 참가하기 위해 가는 기내에서 기자들에게 “러시아와의 긴장 고조 상황을 반영해 유럽에 제5세대 첨단 전투기 F-22 랩터를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옛 소련의 영향권에 있던 동유럽 국가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에 러시아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3일 미 국방부가 러시아 침공 가능성에 대비해 발트해 연안 3국과 일부 동유럽 국가에 3,000~5,000명 규모의 여단급 병력용 탱크와 보병전투차량 등 중화기를 배치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지난 5일부터 발트해 지역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벌였다. 20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훈련은 미군 주도로 17개 나토 동맹국이 참가하며 5,600명의 병력이 동원된다고 나토는 전했다.
이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16일 모스크바에서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만약 나토가 러시아 국경 지역에 대한 위협을 늘린다면 우리도 거기에 대응해야 할 것”이라며 “러시아는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고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러시아는 나토에 맞서 발트해 주변과 북극 지역에서 잇따라 전시성 군사훈련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군사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이 이날 언급한 실전 탄도미사일이 미국을 겨냥한 ‘RS-24 야르스’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2009년부터 배치되기 시작한 야르스는 최대 1만1,000㎞를 날아갈 수 있으며 3, 4개의 핵탄두 장착이 가능하다. 야르스는 적의 방공망을 교란할 수 있는 시스템을 장착해 미국의 MD를 뚫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전역이 러시아 전략미사일군의 핵 미사일 사정권으로 들어오며 미국이 느끼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유리 보리소프 러시아 국방장관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가 최근 미국의 최첨단 군사장비를 수입하려는 움직임과 관련해 “서방의 위협이 증가되면 우리도 이에 맞서 군비 증강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서방, 러시아의 탄도미사일 배치 계획 비난
서방은 이날 성명을 잇따라 내놓으며 푸틴 대통령의 신형 장거리 탄도미사일 배치를 강하게 비판했다. 옌스 슈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은 브뤼셀에서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회담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핵 무력을 앞세운 위협은 정당성이 없다”면서 “러시아의 계획은 파괴적이고 위험하다. 이런 상황이 우리가 군사적인 준비와 대응 태세를 증강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또한 러시아가 비판하는 나토의 유럽에 대한 군사적 영향력 확대와 관련해서는 “모든 동맹국들에게 군사적 안보 조치를 취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반박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도 보스턴 자택에서 영상 브리핑을 통해 “러시아의 탄도미사일 배치가 암시하는 바에 대해 우려하지 않는 이들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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