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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내 정신의 가뭄

입력
2015.06.17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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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짬에 빗소리를 들었다. 나름 요란했고, 그만큼 반가웠고, 시원했다. 오래 퍼부어주길 바랐다. 그러나 금세 그쳤다. 오르다 만 습기가 보태져 비 내리기 전보다 사위가 더 꿉꿉해졌다. 아직 6월 중순, 예보에 따르면 장마는 7월이 되어서야 시작된다고 한다. 간밤이나 새벽녘의 짧은 빗소리가 이토록 반가웠던 6월은 별로 도드라지게 기억나는 때가 없다. 실제 기온보다 마음 속 체감온도의 상승주기를 곰곰 따져본다. 이상하게 돌아오기 싫었던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 밤. 혼자 짐을 싸며 호텔방에서 되새겼던 건 오를레앙의 어느 저택 정원에서 들은 바람소리였다. 우거진 체리열매와 온갖 나무와 풀들이 맑은 대기의 훈풍에 호응해 부드럽고 우렁찬 울음소릴 냈던 건데, 들을 당시엔 서늘했으나 그곳을 떠나 되새기니 이상하게 서글펐다. 새벽녘 들었던 빗소리가 묘하게 그 소릴 닮아있었다. 그만큼 미망이었고 미혹이었다. 어떤 좋은 환경이나 여유가 주는 정신의 호사를 나는 그리워하고 있는 걸까. 지금으로선 그게 맞다고도 아니라고도 하기 힘들 것 같다. 넋을 놓아버릴게 할 정도의 푸름과 미세한 정신의 노고까지도 점묘한 듯한 이국의 표표한 미감에 눈이 현혹되어 이 나라의 모든 것이 그저 얼치기 수용소 같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건지도 모른다. 거기에 겹친 가뭄. 그 메마름에 투사된 내 정신의 각박한 주름들을 본다. 덥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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