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환자 발생이 처음 보고된 5월 20일, 뉴스포털에 올라온 메르스 관련기사는 78건이었다. 후속 보도가 이어진 다음날 824건의 메르스 기사가 생산됐지만, 그 다음 주 월요일인 25일엔 53건에 그칠 정도로 반응은 차분했다.
이 기간 동안 “국내 감염병 분야 최고 권위자는 그 동안 국내에서 사스, 신종플루 같은 국제적 신종 감염병을 잘 극복한 만큼 불필요한 공포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고, 또 다른 권위자는 “바이러스가 국내로 유입됐고, 환자와 밀접하게 접촉한 사람에게 전파된 경우도 나왔지만, 격리 치료를 벌이고 있는데다 전염성 자체가 약해 이 질병이 지역사회로 퍼질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고 조언했다. 질병관리본부는 환자와 접촉한 64명을 격리조치하면서 “강력하고 광범위한 범위”라고 했다. 또한 “환자가 입원했던 의료기관을 방문하더라도 감염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증상을 보이지 않는 잠복기에는 감염 우려가 없다”고도 했다.
5월 26일 기사수는 671건으로 급증했다. 이날 64명의 격리 대상자 중 한 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자신이 간호하던 아버지의 메르스 감염 사실을 알게 된 이 환자가 격리시설 입소를 원했을 때, 당국이 거부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보건당국이 이 환자가 아버지의 “잠복기에 간호를 해 감염 우려가 낮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같은 날 다른 신문은 메르스 관련 “괴담”을 우려하는 기사를 최초로 썼다. 이틀 후 한 방송사는 “실제 환자가 거쳐 간 병원이라 해도 환자나 접촉한 사람들이 이미 다른 곳에 격리된 이상 전염가능성은 전무하다”며 SNS 괴담을 질타했다.
이후 이틀간 일일 메르스 기사수는 50%나 증가했다. 그리고 5월 29일엔 이보다 무려 100% 이상 증가한 1,913건이 쏟아졌다. 이날 중국에 입국한 한국인 의심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 사이 한 신문은 주무 장관이 정부의 메르스 대응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밝힌 사실을 스포츠-연예면에 실었다. 다음날 경찰은 메르스 관련 괴담 수사 개시를 알렸다.
최초 환자와 접촉했던 환자가 사망한 6월 1일 3,508건이던 기사수는 3차 감염자가 나타난 6월 2일 6,401건에 이르렀다. 이후 이틀간 천여 건씩 증가하다 서울시장의 심야 기자회견 다음 날 1만1,820건이 되었다. 이후 메르스 관련 일일 기사수는 1만1,000여 건을 유지하고 있다.
동전던지기를 해서 연속으로 10번 앞면이 나왔다고 해서, 11번째엔 뒷면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는 걸 ‘도박사의 오류’라고 한다. 11번째에 뒷면이 나올 가능성은 여전히 반반이다. 동전던지기에서는 이전의 결과가 이후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작정 어디가 나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도 썩 지혜로운 건 아니다. 10번이나 연속으로 앞면이 나왔을 땐 속임수도 의심해 봐야 한다.
어떤 경우든 도박사의 오류는 게임의 원리나 속임수 여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할 때 나타난다. 같은 이유로 집단이 잘못된 판단에 빠진다면 그건 애초에 바르고 정확한 정보를 차단한 쪽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더군다나 필요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잘못된 판단까지 믿으라고 강요 받게 되면 대중은 스스로 정보를 만들어내려는 욕구에 휩싸일 수 밖에 없다. 이것이 메르스 발발 이후 한 달 여 동안 우리 사회의 대중이 처해온 상황이다.
결국,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게 된 엄마들이 오늘도 아이의 입에 마스크를 씌운다. 정부가 신뢰할만한 메르스 전파 기제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 엄마가 느끼는 감염 확률은 ‘걸리거나, 안걸리거나’와 같은 50%이다. 정부의 예측이 앞으로도 계속 틀린다면, 엄마들은 공중보건시스템 자체의 오작동을 의심하게 될 것이고, 결국 언젠가는 걸릴 수 밖에 없을 거라는 극단적 전망을 갖게 될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는 지난 일 년간 그 비현실적인 두려움이 현실이 된 또 다른 엄마들을 보아오지 않았나.
이원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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