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T기업의 K팝 제작사 인수 경쟁이 가요계를 덮치고 있다. 최근 예능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는 강남(위)의 소속사 정글엔터테인먼트는 지난 4월, '대세 아이돌'로 자리 잡은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5월 통신솔루션업체 씨그널정보통신의 새 이름 시그널엔터테인먼트그룹으로 흡수됐다. OSEN 한국스포츠경제DB
K팝의 상반기 화두는 IT기업의 공격적인 물량공세다. 과거 단발성으로 K팝스타들을 IT기업 의 모델로 삼거나 홍보·마케팅 부문에서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관계를 넘어섰다. 아예 기획사를 통째로 사들여 자회사로 심어두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정글엔터테인먼트, 산타뮤직 등이 이같은 방식으로 줄줄이 인수됐다. 안정적인 투자처를 원하는 기획사와 문화 콘텐츠를 장착하려는 업체간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 IT기업들의 이러한 행보는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중국 시장이나 나스닥 진출을 노리는 곳에서 K팝 기획사들을 향해 군침을 흘리고 있다.
◇ IT+엔터 '이종교배' 활발
국내 IT 기업들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이종교배는 올해 들어 유독 활발하다. 한류, 그 중에서도 해외시장에서 안정적인 영역을 확보한 K팝에 대해 눈독을 들이고 있다. 자연스레 이를 제작하고 기획하는 음반사가 먹잇감이다. IT 기업들은 10~60억 원 수준으로 전환사채를 발행해 음반사 지분을 모두 인수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피키캐스트, 쿠차, 이노버즈 등을 갖고 있는 모바일 서비스 기업 옐로모바일은 자회사로 옐로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거동을 시작했다.
첫 행보로 지난 4월 산타뮤직을 보유한 인넥스트트렌드의 지분을 100% 인수했다. 산타뮤직은 나얼과 정엽이 있는 그룹 브라운아이드소울, 버즈, 에코브릿지 등을 거느리며 음악과 공연 사업을 펼쳐온 회사다. 아이돌 그룹은 없지만 탄탄한 음악성으로 일본 굴지의 기획사 에이벡스와 협력 관계를 이어온 곳이기도 하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유력 음반 제작자를 영입해 수십억 원을 들여 자체 제작에도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솔루션업체 씨그널정보통신은 아예 간판까지 씨그널엔터테인먼트그룹으로 바꿔 달았다. 지난 2월 송승헌의 더좋은이엔티와 김현주, 이미연 등이 속한 에스박스미디어를 인수하더니 4월 정글엔터테인먼트를 10억원, 5월엔 빅히트엔터테인먼트를 60억원에 각각 사들였다. 빅히트는 유명 작곡가 방시혁을 대표로 두고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이 있다. 씨그널은 예능 제작사까지 인수하며 화려한 진용을 완성했다.
◇ 글로벌 추세 '우리도 엔터!'
이같은 움직임의 배경은 글로벌 시장의 흐름과도 맞닿는다. 국내 정서와 달리 해외에선 일찌감치 엔터 산업을 병행하는 기업에 대해 높은 가치를 매겼다.
애플, MS, 구글 등 글로벌 IT 기업들은 엔터테인먼트 업체들과 지속해서 협력하며 성장해왔다. 요즘은 아예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심인 L.A 할리우드 근처로 IT 기업의 거점이 옮겨지는 추세다.
중국의 3대 IT 공룡으로 꼽히는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역시 앞다퉈 문화 콘텐츠 영역에 진출하고 있다. 알리바바는 영화사도 설립했다. 이 세 곳은 SM·JYP·YG엔터테인먼트와도 이미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기업인수합병을 전문적으로 하는 에이전트 A씨는 "미국에서 문화 사업의 확장은 기업의 무형 가치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며 "나스닥이나 중화권 진출을 노리는 국내 IT기업들에게 K팝은 자사 브랜드 이미지 강화뿐 아니라 수익성면에서 좋은 아이템"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에이전트 B씨는 "구글이 8억원에도 안 팔리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유튜브를 등에 업고 400조원 가치로 뛰지 않았나"라며 "규모의 차이는 있겠지만 K팝의 영향력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수년간 시행착오를 거쳐 안정적인 시장을 형성했고 드라마처럼 큰 예산이 필요하지 않는 것도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K팝을 이용해 단순히 기업의 무형 가치만 높이려는 전략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스타를 앞세운 콘텐츠는 성격이 다른 산업이라도 대부분을 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수익 창출의 다양한 포트폴리오로 활용이 가능하다.
이러한 차원에서 씨그널엔터테인먼트그룹은 최근 화장품 제조사 스킨애니버셔리도 품안에 넣었다. 대형 연예 기획사들처럼 중화권에서 적극적인 스타 마케팅을 펼치겠다는 예비 동작이다. 옐로엔터테인먼트는 모회사의 다양한 모바일의 플랫폼을 이용해 콘텐츠를 확보하고 유통할 생각이다. 스마트폰을 통해 나만의 콘텐츠를 가지려는 이용자들이 늘면서 인기 콘텐츠가 유료 판매의 수익모델이 되고 있다. 더불어 음반·공연 기획과 유통에 능한 중화권 파트너도 물색 중이다.
▲ 해외시장에 진출을 꾀하는 IT기업들이 음반기획사 인수 경쟁에 들어갔다. 문화 사업을 통해 기업 이미지를 높이려는 업체와 안정적인 투자처를 원하는 연예 기획사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이같은 움직임은 탄력을 받고 있다. 사진은 K팝에 열광하는 해외팬들과 옐로모바일에 인수된 산타뮤직 소속의 정엽(위 왼쪽)과 나얼.
◇하반기도 활기 예상 '먹튀 조심'
하반기에도 IT기업과 엔터사 간 협력체제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아직 공식적인 발표가 나오지 않았지만 몇몇 음반사들이 IT업체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고심 중이다.
안정적인 투자와 독립된 제작 시스템만 보장된다면 음반사 입장에서도 반길 일이다. 그러나 고민과 우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 특성상 중장기적인 투자와 기다림이 필요하다. 스타로 발돋움 하기까지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게 소요된다. 그나마 SM이나 YG 등 대형 기획사나 중견 기획사들이 육성 시스템을 안착시키며 소비를 최소화 하고 있다. 하지만 데뷔까지 그룹당 평균 10억원 가까이 쓰여지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다고 성공이 보장된 것도 아니라서 남기는 수익은 기대 이하일 경우도 많다.
한 연예기획사 대표 C씨는 "엔터 산업은 3~5년 중장기적인 투자와 기다림이 필요한 분야다. 막대한 투자를 했더라도 바로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며 "딱딱한 기업 마인드로 눈 앞에 보이는 수익에만 연연한다면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다른 연예 관계자는 "벤처 열풍이 불었던 2000년대 초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연예인을 이용해 주식으로 시세 차익을 보고 발을 뺀 벤처기업들이 많았다. 비록 그 때와 상황이 다소 다르지만 심사숙고 해야 할 부분"이라고 조언했다.
심재걸 기자 shim@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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