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서류심사 기준·경쟁률 비공개
탈락 이유 모른 채 필기시험서 배제
"그냥 믿으라는 식"… 공정성 논란
‘유감스럽게도 배의철 변호사님께서는 이번 서류심사 합격자 대상에 포함되지 못하셨습니다. 최선을 다 하신 변호사님께 축하의 말씀을 드리지 못하게 된 점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다만 법조경력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법관임용절차가 시행되고 있으니, 앞으로도 계속 관심을 가져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지난해 9월 3일 법원행정처가 경력법관에 지원한 배의철 변호사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이다. 사법연수원 출신의 4년차 변호사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배 변호사는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기분이 편치 않다. ‘대체 경력법관은 어떻게 뽑길래 서류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했을까’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배 변호사는 16일 “지금 생각해도 서류심사의 탈락 기준이 무엇인지 도대체 모르겠다”고 말했다.
법조일원화의 확대로 변호사 출신 경력법관 임용비율이 늘어나면서 서류전형 기준 등을 공개하지 않은 대법원의 ‘비밀주의’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대법원은 현재 경력법관을 임용할 때 서류심사를 통해 일부를 탈락시키면서도 ▦전체 지원자는 몇 명인지 ▦서류심사 탈락자는 몇 명인지 ▦서류심사의 구체적인 기준은 무엇인지 ▦탈락 사유는 무엇인지 등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사법연수원 성적순으로 판사가 되던 때와 달리,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신들은 변호사시험 성적도 알 수 없다. 따라서 서류심사에서 연수원 성적, 학점기준(로스쿨 출신의 경우) 등 지원자를 탈락시키는 기준이 있다면 명확히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행정고시나 외무고시 등 비슷한 수준의 다른 국가고시 가운데 서류심사로 필기시험을 볼 기회조차 박탈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법원행정처는 “서류심사는 아주 기본적인 기준에 부합하는지 여부만 보고 있으며 탈락자는 10%도 안 되는 미미한 비율”이라며 “검찰, 변호사협회, 로스쿨 교수 등이 포함된 법관인사위원회에서 블라인드 테스트 방식으로 심사를 하기 때문에 공정하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개인정보보호법 상 인사에 관한 사안은 비공개 사유에 해당한다”며 “다만 (탈락자) 본인이 그 사유를 알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객관적이고 명백한 기준의 의해 탈락되는 것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서류심사 기준을 밝힐 수는 없지만 공정한 심사가 이뤄져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법원 해명은 ‘묻지마 식’ 서류심사 탈락에 대한 불신의 시선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다. 가뜩이나 법관 임관제도가 연수원 출신 법관 임용에서 경력법관 임용으로 빠르게 바뀌면서 선발의 공정성에 대한 우려가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법시험은 2017년까지만 존치되고 이제 연수원을 졸업하고 바로 법관이 되는 경우는 조만간 사라지게 된다. 현재 경력법관은 법조경력 3ㆍ4년, 5년 이상으로 이원화해 뽑고 있으며 법관 임용은 2018년부터 법조 경력 5년 이상으로 일원화된다. 과거처럼 연수원 성적 같은 객관적인 기준으로 법관을 선발하는 것은 불가능해진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서류심사 기준조차 밝히지 않는 비밀주의 뒤에서 안주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김한규 서울변호사회 회장은 “대법원의 해명은 ‘나를 믿어라. 잘하고 있다’는 논리일 뿐 임용의 공정성 문제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라며 “서류심사 탈락의 기준과 이유, 탈락 인원 등을 밝혀 공정하게 법관을 선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청환기자 ch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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