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제자 중 첫 순교자 야고보 묻힌
콤포스텔라 대성당까지 6갈래 길
해마다 다국적 순례자 20만명 발길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교황직 수락과 동시에 자신의 교황명으로 프란치스코를 택했다. 당선이 확실시되던 아르헨티나 출신의 그에게 한 추기경이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마십시오”라고 했고, 그 순간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1181 또는 1182~1226년)를 떠올렸다는 것이다.
성 프란치스코는 온 재산을 늙은 사제에게 건네고, 성당을 지을 돌을 구걸하며 한센병 환자들을 돌봤으며 재산을 소유하지 않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를 세워 떠돌며 가난한 이를 돕고 설교하는데 헌신한 성인이다. 30세 전후 목숨을 건 순례로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지방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이르렀고, 땅을 내 주지 않으려는 지역 수도원장에게 매일 물고기를 잡아 바치며 수도원을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순례 이후 그는 아시시로 돌아가 작은형제회를 체계화했고, 베들레헴 예수 탄생을 재현한 성탄 구유를 만들었다. 성탄절에 흔히 보는 아기 예수 장식이 ‘가난하고 무력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를 강조하기 위해 그가 처음 만든 것이다.
9일 성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까지 가는 순례길 까미노 데 산티아고에는 다양한 국적의 순례자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며 각자에게 고독의 시간을 선물하고 있었다. 순례길에서 만난 한국인 이윤정(41)씨는 지난달 30일 출발해 11일째 매일 20~30㎞를 걸었다. 그는 “힘든 시기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 시기가 생각보다 일찍 와 2주간 휴가를 냈다”며 “광활한 대지와 시골 냄새 속에 누리는 단순한 일정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치유의 길”이라고 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은 예수의 12사도 가운데 첫 순교자인 성 야고보(스페인어로 산티아고)의 유해가 발견된 곳에 1078년부터 지어졌다. 이후 스페인 국경에서 대성당까지 가는 여섯 갈래 순례길은 사제들의 묵상과 속죄의 여정이 됐고, 20세기 이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의 방문과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순례자’ 등을 계기로 세계 여행자들의 버킷리스트에 올랐다.
대성당에 도착하자 수십 명의 순례자들이 완주의 흥분으로 얼굴을 발갛게 달군 채 성당의 순례 증명서 발급을 기다리고 있었다. 증명서를 받는 사람은 매년 20만명이 넘는다. 순례길목에 위치한 마을 성당과 대성당의 사제들은 묵묵히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다. 미사는 매일 오전 7개 국어로 열린다. 중세 어느 나라 못지않게 종교전쟁, 강압적 개종 요구, 마녀사냥을 비롯한 광적 종교재판 등의 어두운 역사를 지닌 스페인 가톨릭 교회에게 묵상, 반성, 속죄, 변화는 영원한 숙제다.
이날 만난 세군도 페레스 대성당 주임 신부는 “다문화 다국적의 신자, 비신자들은 모두 나름의 아픔 걱정 초조함 속에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나는 분들로 이들에게 복된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책임이 무겁다”며 “운영의 어려움 등으로 순례길에 사제가 없는 공소(公所)가 많은 점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만남 직전에 교황 방문이 어려워졌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그는 “올해가 프란치스코 성인이 수도원을 지은 지 800년이 되는 해라 교황 방문을 요청했는데 스페인에 방문할 시, 아빌라나 로욜라 등 들러야 할 곳이 많아 일정이 반려됐다”며 “교황님의 성정 상 사흘의 시간이 나면 아프리카를 가시지 않겠냐”며 웃었다.
그는 순례의 소득으로 자아발견을 꼽았다. “물질주의로 복잡한 요즘 사회 속에서 특히 예수의 제자들은 일관성을 가지고 자신을 희생한 사도 야고보와 하느님의 인격을 만나는 소중한 경험을 하겠죠. 또 다양한 순례자들도 이 길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되짚어 보고 ‘나는 누구의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을 것으로 봅니다.”
이날 성당에는 한국에서 온 순례자들도 34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감사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경남 마산시 회원동성당에서 온 최철순(60), 황영순(60)씨는 “하루 28~30km 걸어와 오늘 인가증을 받았다”며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걷는 것조차 내 의지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더라”고 말했다. 그들은 성당에서 순례자들이 뽑아 읽을 수 있도록 한 쪽지를 고른 상태였다. 이 문장이 우리 생의 여정도 지탱할 수 있을까. “삶은 살아내야 할 신비이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스페인)= 글ㆍ사진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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