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지역 탓 미인가 불이익 감수
지자체 도움 덕 운영위기 넘겼는데
市 돌연 "대표 정년 맞춰 지원 중단"
“우리 동네 아이들의 유일한 아지트인 공부방을 지켜주세요.”
16일 오후 재개발지역인 경기 부천시 계수동의 허름한 마을회관 문을 심지은(12ㆍ가명)양이 열고 들어왔다. 회관은 이 지역 아이들에게는 소중한 공부방이자 놀이터다. 이름은 지역명을 딴 ‘범박공부방’. 그런데 7년째 하굣길에 공부방을 들르는 심양에게 최근 큰 걱정거리가 생겼다. 몇 달 전 “공부방이 곧 문을 닫는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50㎡ 남짓한 공부방의 학습환경은 사실 썩 좋지 못하다. 한쪽 벽에 교과문제집과 청소년 서적 얼마가 꽂혀 있고, 바닥에 탁상 두 개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심양에게 이 곳은 어릴 적 추억이 담긴 소중한 공간이다. 그는 “자원봉사 선생님들 덕분에 학교 수업도 겨우 따라갔는데 이제는 막막해졌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 기간 저소득층 가정 아이들을 품어온 공부방이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중단으로 폐쇄 위기에 내몰렸다. 범박공부방은 규모는 작지만 30년 동안 명맥을 이어 온 지역의 대표 명소. 지부예(65)씨가 목사인 남편과 함께 1986년 부천시 범박동 교회에서 끼니를 거르는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고 틈틈이 공부도 가르친 것이 시작이었다. 변변한 도움 없이 지씨 개인의 힘으로 꾸려왔던 공부방은 안정적인 공간을 찾지 못해 이후 수 차례 이사를 하다 2000년 계수동 마을회관에 터를 잡았다.
2003년 아동복지법이 개정되면서 정부와 지자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지역아동센터’로 탈바꿈할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지씨는 재개발이 완료될 때까지 철거 지역에 남아 있을 아이들을 외면할 수 없어 미인가 시설로 남았다. 이 같은 사정에 몇 번이고 운영 중단 위기를 맞았으나 6년 전 우연히 소식을 접한 김문수 당시 경기지사가 지원을 약속하면서 부천시로부터 매달 받는 250여만원으로 근근이 버텨왔다.
그러나 부천시는 올해 초 “지 대표가 6월이면 정년을 맞이하니 그 다음달부터는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통보했다. 미인가 시설을 지금껏 지원한 것만해도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30년 역사가 끊긴다는 사실도 안타깝지만 더 큰 문제는 공부방이 사라지면 아이들 안전도 위협 받는다는 점이다. 지 대표는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빈집이 많아 동네가 흉흉하다”며 “아이들이 그나마 안전하게 지낸 곳이 공부방이라 앞날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국일보의 취재가 시작되자 부천시는 긴급 대책 마련에 나섰다. 시 관계자는 “지금은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 어렵지만 어떤 식으로든 공부방이 문을 닫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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