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캐릭터에도 유행이 있다. 올 초에는 남자 배우들의 다중인격이 한 차례 휩쓸었다. 지성이 MBC '킬미,힐미'에서 무려 7명의 인격을 가진 캐릭터를 소화했고, 현빈은 SBS '하이드 지킬, 나'에서 마찬가지로 다중인격의 캐릭터를 연기했다. 여름에는 여배우들의 1인2역 연기가 안방극장에 반전을 선사하고 있다.
수애는 SBS 수목극 '가면'에서 1인2역을 찰지게 소화 중이다. 수애는 피를 나누지 않았지만 얼굴이 판에 박은 듯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라는 소재를 통해 극과 극의 두 여자를 연기하고 있다. 수애는 사채에 허덕이는 집안의 사실상 가장인 백화점 여직원 지숙과 대통령 후보 아버지를 둔 안하무인의 부잣집 딸 은하를 오갔다. 특히 3회 은하의 죽음 이후 오롯이 지숙이 은하를 연기하는 불완전한 모습은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나 다름없다. 정략 결혼한 주지훈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으려는 아슬아슬한 모습을 보노라면 시청자들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다.
수애는 첫 회부터 섬세한 연기로 완전히 다른 두 여자를 표현해 시청률 상승은 물론 방송 4회 만에 10%를 돌파하며 '가면'을 동시간대 1위 드라마로 올려놨다.
16일 종영한 KBS2 월화극 '후아유-학교 2015'(후아유)는 여주인공 김소현의 1인2역이 흥행의 포인트로 작용했다. 김소현은 나이답지 않은 연기력으로 쌍둥이 자매를 소화했다. 똑똑하고 인기 많은 고은별과 고아로 자라 왕따를 겪는 이은비의 두 역할을 능란하게 오갔다. 김소현은 서로 상반된 인생을 살던 쌍둥이의 미스터리와 왕따, 계급 차별, 공부가 전부인 학교 등의 주제를 버무리며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특히 죽은 줄만 알았던 은별의 회생으로 1인2역 연기가 더욱 입체적으로 빛났다. 김소현은 '후아유'의 성공으로 연기력을 입증하며 한층 더 높은 도약을 예고하게 됐다.
하반기에도 여배우들의 1인2역은 시들지 않을 전망이다. 김소은은 7월 방송 예정인 MBC 수목극 '밤을 걷는 선비'에서 흡혈귀가 된 이준기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내놓는 여인이자 속내를 알 수 없는 양갓집 규수를 넘나드는 연기를 펼친다.
'대장금' 이후 13년 만에 드라마에 컴백하는 이영애 역시 1인2역을 피해갈 수 없다. SBS '사임당-Herstory'는 신사임당의 삶을 재해석한 이야기다. 이영애는 조선시대 신사임당과 현대의 한국 미술사 전공 대학강사 서지윤을 오간다. 이영애는 우연히 발견한 사임당의 일기와 의문의 미인도에 감춰진 비밀을 풀면서 과거와 현재의 두 여인을 그릴 예정이다.
1인2역이 도드라지는 현상은 소재의 한계를 지적할 수 밖에 없다. 지상파 3사를 비롯, tvN OCN JTBC 등 드라마 방송 창구가 다양해지면서 작품의 소재가 겹치는 현상이다. 다만 1인2역은 운명의 비밀, 인연 등 시청자를 자극하는 소재들을 쉽게 풀어낼 수 있는 장치로 작용하고 있다. '가면'의 이용석 책임PD는 "1인2역은 극과 극의 설정이 가능해 극성이 강화돼 이야기에 힘이 있다. 드라마의 러닝타임이 길어지면서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우의 입장에서도 1인2역은 환영 받고 있다. 수애는 '가면' 제작발표회 당시 "도플갱어의 소재가 마음에 들었다. 가난하면서 충족된 내면과 부자이지만 빈곤한 내면을 표현하려 한다"고 말했다.
'후아유'의 김소현도 "과거와 현재에 존재하는 게 아닌 동시간에 존재하는 두 명을 연기하다 보니 어려운 부분이 조금 많았다"고 토로하기도 했었다.
이현아 기자 lalala@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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