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공 대신 기계로 짠 모시 '라미' 저렴하고 이물감 없어 인기
침실을 호텔처럼 꾸미려면 서늘한 질감의 리넨 침구 제격
오래 덮은 듯한 감촉의 워싱 인견 퀼팅자수 더하면 고급 분위기
우리는 침대에서 인생의 3분의 1을 보낸다. 침구가 옷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 집이 크건 작건, 내 소유건 아니건, 한 몸 누일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침대는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안락한 잠자리는 그렇게 이데올로기적이다.
아무리 게으른 사람이라도 침구를 바꿔야 하는 계절이 왔다. 아침에 눈떠 보면 덮여 있기보다는 차여 있기 일쑤인 두툼한 이불을 치우고, 보송보송한 잠자리를 고민해야 할 때다. 여름 이불은 무엇보다도 소재가 중요하지만, 색상과 패턴이 끼치는 영향도 상당하다. 촉각과 시각이 협업해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한여름 밤의 단잠은 공감각적이다. 여기에 하나 더. 사각사각, 가슬가슬, 서걱서걱. 옆자리의 이불 스치는 소리까지 더해지면 아무리 덥고 습한 한여름 밤이라도 우리의 꿈결은 이내 청량해진다.
가볍고 가슬가슬한 라미 리플로 ‘꿀잠’
여름 침실이 쾌적하기 위해서는 이불에 낮 동안의 열기가 축적되지 않는 가볍고 가슬가슬한 소재를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덮지 않은 것보다 덮은 것이 더 시원해야 한다는 역설이 여름 이불의 사명이기에 땀을 잘 흡수하는 동시에 잘 마르는 소재여야 한다. 우리 조상들이 전통적으로 모시나 삼베로 옷이나 이불을 지었던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신소재가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지만, 여름 침구는 여전히 모시와 삼베에 근간을 두고 있다. 요사이 여름 침구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소재는 라미(Ramie). 원래는 모시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지만, 국내에선 기계로 짠 모시를 통상 ‘라미’라고 표기한다. 여름을 대표하는 소재는 우리가 흔히 마라고 부르는 소재인데, 풀의 종류와 가공법에 따라 모시, 삼베, 리넨 등으로 나뉜다. 모시는 저마, 리넨은 아마, 삼베는 대마가 주원료다.
모시는 모시풀의 줄기 껍질로 짠 원단으로, 실을 촘촘하게 짜서 습기를 잘 흡수하고 통풍 기능이 뛰어나지만 가격이 비싸다. 수공으로 직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격 경쟁력을 위해 개발된 기계직 모시 라미는 가격이 저렴한 것은 물론 수공모시보다 얇은 실로 직조할 수 있어 조직이 더 부드럽고 단단하다. 모시의 거친 느낌을 싫어하는 예민한 사람에게도 이물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매끄럽다. 거기다 세탁 내구성도 우수해 막 빨아 써도 이불의 틀이 망가지지 않는다. 세탁할 때는 찬물로 세탁기에 돌리고, 리플 때문에 공처럼 뭉칠 수 있으므로 널 때는 탁탁 잘 털어 넌다.
라미 소재는 요철 형식으로 후가공을 해 라미 리플이라는 원단으로 많이 쓴다. 리플이라는 이름처럼 잔물결 치듯 올록볼록한 원단이 피부에 닿는 접촉면을 줄여줘 더 시원하게 해준다. 박홍근홈패션의 홍세진 디자인연구소장은 “라미 리플은 통풍이 잘돼 덥다고 이불을 덮지 않는 것보다 끈적임이 덜하고 쾌적하다”며 “이 감촉이 싫다면 후가공을 하지 않아 부드러운 촉감이 그대로 살아 있는 라미 플레인 소재를 고르면 된다”고 조언했다.
여름 이불은 블루와 화이트의 조합이 정석이지만, 자칫 단조로울 수 있다. 이때는 고급스러우면서도 이국적인 페이즐리 무늬나 외국의 리조트를 연상시키는 과감하고 원색적인 패턴도 시도해 볼 만하다. 기하학적 모티프나 도형이 반복적으로 프린트된 침구도 여름의 밋밋한 침실에 활기를 부여한다.
호텔식 베딩에는 리넨이 제격
요새는 침실을 호텔처럼 꾸미는 사람들이 많다. ‘일상의 럭셔리’라는 시대적 열망의 소산이다. 겨울에야 거위털 이불에 흰색이나 아이보리 계열의 심플한 이불보를 씌우면 쉽게 호텔방처럼 연출되지만, 여름은 만만치 않다. 이때 유용한 게 리넨 침구다. 리넨은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의 테이블보나 냅킨 등에 쓰이는 뻣뻣한 직물을 떠올리면 된다. 라미가 너무 가벼워 이불 특유의 지그시 눌러주는 무게감이 없는 게 싫다는 사람도 많다. 리넨은 참을 수 없는 여름 이불의 가벼움을 싫어하는 이런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리넨은 사계절 두루 쓰이는 소재지만, 면보다 공기 중 습기를 20배까지 흡수, 방출하는 특성이 있어 여름에 특히 좋다. 빳빳하게 펴지는 서늘한 질감에 자연스런 구김이 오히려 멋스러운 리넨은 굳이 흰색 계열이 아니어도 호텔 분위기를 낼 수 있다. 갈색이나 회색 계열의 무채색이나 채도가 낮은 원색으로 꾸미면 세련되면서도 내추럴한 침실이 연출된다. 다만 밋밋할 수 있으므로 대조색이나 대담한 패턴의 베개 및 쿠션으로 포인트를 주는 게 좋다.
냉장고 이불 ‘인견’과 모달섬유
요사이 ‘냉장고 이불’ ‘냉장고 잠옷’ 등의 이름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소재는 인견이다. 인조견의 준말인 인견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레이온 소재와 같다. 비스코스 레이온으로 불리는 목재 펄프에서 추출한 재생 섬유인데, 소재 자체가 매우 차가운 성질이 있다. 면보다 흡수성이 우수하고 실 사이에 공기를 포함한 비율인 함기성이 낮다. 여름 밤의 높은 습도와 열기가 오히려 인견이불을 덮으면 가라앉는 효과가 있어 ‘냉장고 섬유’로 불리고 있으며, 영어로도 ‘아이스 실크’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나무 소재가 지닌 차가운 촉감과 통기성 때문에 땀띠, 알러지, 아토피 피부염 등에 좋다.
인견을 한번 더 가공한 워싱 인견은 오래 덮은 듯한 자연스런 감촉이 더해진 소재. 여기에 퀼팅 자수를 놓으면 고급스런 분위기를 살릴 수 있다. 색깔은 파스텔톤을 고르는 게 시원한 느낌을 배가할 수 있어 좋다. 사실 땀과의 전쟁은 배보다는 등쪽. 인견은 라미에 비해 두께감이 있어 침대 매트로 깔고 잘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세탁은 울세탁 버전으로 세탁기에 돌린 후 낮은 강도로 탈수해 그늘에 말리면 된다.
인견과 비슷하지만 보다 부드럽고 마모가 덜한 섬유가 모달이다. 너도밤나무에서 셀룰로스 성분을 추출, 무공해 공법으로 재생해 만든 친환경 섬유로, 레이온이 세탁 후 급격히 표면이 벗겨지는 단점을 보완했다. 원사가 섬세해 유연성 지수가 월등히 높은 이 섬유는 실크에 필적할 만큼 부드러워 속옷 소재로도 많이 쓰인다.
홍세진 소장은 “기능성 신소재인 모달에 리플 가공을 하면 피부에 닿는 부드러움은 탁월한 반면 통풍이 잘 되기 때문에 여름 이불로 아주 좋다”고 말했다. 가슬가슬한 이불에 피부가 잘 붉어지는 민감성이라면 선택할 만한 아이템이다.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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