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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퇴짜' 맞은 코리아오픈

입력
2015.06.1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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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세계 4대 메이저대회중의 하나인 프랑스오픈이 지난 8일 막을 내렸다. 올해로 제114회째를 맞이한 프랑스오픈은 메이저 대회 중 유일하게 클레이(Clayㆍ점토)코트에서 열린다. 클레이코트를 장식하고 있는 주성분은 섭씨 1,5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낸 붉은색 벽돌을 빻아 만든 가루다. 쉽게 말해 붉은색이 가미된 맨 땅인 셈이다.

대회 조직위 측은 “클레이코트가 곧 프랑스 오픈의 상징”이라고 말할 정도로 코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때로는 흙바람이 선수들의 경기력을 방해하고, 관중들의 시야를 가리는 데도 흔들림 없이 클레이코트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 프랑스 오픈에서 최고의 히트상품은 ‘전대미문’ 9년간 남자 단식 왕좌를 지켜온 라파엘 나달도, ‘테니스 요정’ 마리아 샤라포바도 아니다. 더구나 커리어그랜드슬램(4대 메이저대회 석권) 마지막 퍼즐을 맞출 것으로 유력시 됐던 노박 조코비치도, 32년만에 프랑스인으로 남자 우승컵을 들어올려줄 것으로 한 몸에 기대를 받은 조 윌프레도 송가도 아니었다. 바로 클레이코트다. 경기장 주변 기념품 매장 직원들은 “클레이코트의 흙을 병 모양 열쇠고리에 담아 파는 기념품이 베스트셀러”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 열쇠고리는 이번 대회에서 1개당 26달러에 판매됐다. 비슷한 크기의 다른 열쇠고리 가격이 12달러인 점에 비춰보면 2배 이상의 부가가치를 지닌다.

맨 땅의 흙을 열쇠 고리에 담아 파는 대회 조직위의 상혼(商魂)에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대동강 물을 팔아 먹었다’는 조선 후기 풍자적 인물 봉이 김선달의 프랑스판 버전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 오픈 조직위의 무릎을 치게 하는 마케팅은 사실 10여년 전부터 이어져왔다. 대회와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상품화 시키는 상상력이 놀랍다. 이쯤 되면 물과 공기도 상품화에 나설 수 있지 않을까.

‘테니스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윔블던은 또 어떤가. 이른바 ‘흰색 마케팅’은 130년 가까운 대회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출전하는 선수들은 반드시 흰색 유니폼을 착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신발 밑창 무늬까지 흰색 통일을 강요할 정도다. 만약 흰색을 거부한다면? 당연히 대회 출전은 포기해야 한다. 전통으로 출발했지만 마케팅으로 진화한 대표적인 경우다. 테니스 패션의 변화가 윔블던에서 물꼬를 텄다는 것은 상식이다.

US오픈, 호주오픈 같은 국가 명이 아닌 대회 이름 윔블던도 예사롭지 않다. 영국 런던의 작은 시골 마을에 불과한 촌 동네가 세계인의 머릿속에 각인돼 있다. 윔블던 우승컵을 외국선수가 독차지한다고 해서 비롯된 ‘윔블던 효과’(국내에서 외국기업보다 자국기업의 활동이 부진한 현상)라는 말은 경제학 용어로까지 지평을 넓혔다.

이들 대회에 비해 격은 떨어지지만 우리나라에도 내로라하는 국제대회가 있다. 추석 즈음에 열리는 여자프로테니스(WTA)투어 코리아오픈이다. 2004년 창설돼 2011년까지 8년 동안 한솔그룹이 후원사를 맡아 한솔 코리아오픈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올림픽공원 코트에서 개최됐다. 샤라포바, 비너스 윌리엄스 등 수많은 스타들이 대회를 거쳐갔다. 남자프로테니스(ATP) 대회가 없는 우리나라로선 톱스타들을 만나고, 테니스 코리아를 알릴 수 있는 무대였다.

그러나 한솔그룹이 타이틀 스폰서를 포기하면서 사정이 급변했다. 2012~13년엔 KDB금융그룹이, 지난해엔 기아자동차가 스폰서를 맡아 기아코리아오픈 이름으로 개최됐다. 하지만 올해는 대회자체가 불투명하다는 암담한 소식이다. 심지어 한솔그룹이 대회 개최권을 시장에 내놨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ATP랭킹 60위권까지 이름을 올린 정현의 출현으로 한국테니스가 제2의 도약기를 맞고 있는 이때,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우려된다. 9월말 추석까지는 불과 100일 안팎. 2015 코리아오픈을 과연 만날 수나 있을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최형철 스포츠부장 hcc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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