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로, 건강하게 돌아오겠다!"
동방신기의 화려했던 2막이 끝났다.
14일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동방신기의 엔진은 잠시 멈춘다. 유노윤호가 7월 21일 입대하기 전 마지막 동방신기의 활동이었다. 아직 입영 날짜를 받지 않은 최강창민의 군복무까지 감안하면 2~3년간은 다시 못 볼 동방신기의 무대였다. 최강창민은 최대한 공백을 줄이기 위해 입대를 앞당길 생각이다. 하지만 드라마 계약이 하나 남아있다.
2004년 다섯 명으로 시작해 최고의 아이돌 그룹으로 군림했던 1막. 그리고 2009년 살점이 떨어져 나갔던 아픔을 겪으며 2011년 두 명으로 부활했던 2막. 변치 않고 꾸준히 정상을 지켜오던 동방신기의 11년 영욕을 기록했다.
◇ 화려한 1막 '불도저'
동방신기의 등장은 가요계 '불도저'와 같았다. 모든 기록을 싹 갈아치웠고 K팝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았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일본은 아이돌 그룹으로선 넘볼 수 없었던 시장이었다. 과감히 도전을 택한 동방신기는 소극장 공연부터 시작했고 일본의 젊은층은 전염병처럼 한국의 아이돌에 빠져들었다.
선구자답게 동방신기가 일본에서 세운 '최초'의 기록은 20여 개가 넘는다. 2006년 8월 싱글 '스카이'로 아시아 그룹 최초로 오리콘 주간차트 톱10에 진입했다. 2008년 1월 싱글 '퍼플라인'으로는 발매 첫 주 아시아 그룹 및 남성 가수 최초로 1위를 달성했다. 그해 연말 일본에서 가장 인기 높은 가수들만 출연한다는 '홍백가합전'에는 국내 아이돌 그룹 사상 처음으로 초대됐다.
◇ 아픔 그리고 부활
승승장구하던 이들에게도 시련은 찾아왔다.
2009년은 여름은 뜨거운 더위만큼이나 동방신기에게 숨막힌 시간이었다. 시아준수·영웅재중·믹키유천 등 세 멤버가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전속계약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팀은 조각났다. 날선 법정 공방이 지속됐고, 세 멤버는 결국 JYJ이란 이름으로 따로 활동을 시작했다. 동방신기는 이대로 해체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유노윤호와 최강창민은 2년 뒤 동방신기란 이름으로 보란 듯이 부활했다. 2011년 발매된 정규 5집 '왜'는 동방신기의 2막을 여는 상징으로 남아있다. 그 당시 국내 모든 차트는 물론 일본, 중화권에서 1위를 석권했다. 2인조에 대한 한계와 우려의 시선을 불식시키며 사라질 수 있었던 동방신기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일본에서도 여전했다. 2014년 11월 발매된 일본 싱글 '타임 웍스 원더즈'는 408만 8,000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역대 해외 아티스트 사상 최고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외에도 동방신기는 도쿄돔 최초 4년 연속 공연, 4년간 일본 단독 투어 누적 관객 275만명 동원 등의 금자탑을 세웠다.
◇ 웃으면서 내려진 2막
입대 전 마지막 무대에서 유노윤호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11년간 어렵게 지켜온 동방신기의 이름을 당분간 내려놓게 됐지만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유노윤호는 "떠날 때 웃으면서 떠나는 게 제 원칙"이라며 "살면서 여러 추억이 있는데 또 하나의 멋진 추억이 될 것 같다"고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또 "동방신기로 데뷔해 창민이와 여러분이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창민과 참 많이 싸우고 웃었다. 무대에서 힘들고 외로울 때 창민이가 손잡아주고 있어 여기까지 왔다"고 고마운 마음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데뷔 전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를 부르고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약속 지켰습니다"라고 소리쳤다.
최강창민은 "건강하게 이 무대로 돌아오고 싶다. 항상 동방신기가 삶의 활력소이자 비타민이 됐으면 좋겠다"며 제대 후에도 계속될 동방신기의 세 번째 막을 예고했다.
심재걸 기자 shim@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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