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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선] 연예인 사진, 돈 내고 써야 할까요?

입력
2015.06.16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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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해 전 일이다. 지인 의사 A로부터 연락이 왔다. 송사에 휘말렸단다. A를 피고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장이 날라왔다는데, 그 소장을 읽어보니, 원고 이름이 낯익었다. 당시 가장 핫했던 여자 가수였다. 그 여자가수(정확히는 그 여자가수의 소속사)는 A가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얼굴을 무단으로 사용했으므로 20,000,000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이른바 퍼블리시티권 침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소장 총 10페이지 중 8페이지를 “퍼블리시티권”이 무엇인지, 어떻게 유래되었는지, 우리나라에서 인정된 사례가 무엇무엇인지에 대하여 서술하는 데에 사용하였다. 말이 많으면 자신감이 떨어져 보인다. 원고 변호사 또한 퍼블리시티권이 법원에서 인정될 지에 대하여 자신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퍼블리시티권이라는 것이 미국의 28개 주에서 인정되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명백히 인정하고 있는 명문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A가 이 소장을 받았을 무렵은 하급심 법원들이 대체로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가수 유이, 백지영, 배우 신은경, 백지영, 김선아 등의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한 의사나 한의사들이 패소하는 분위기였던 것이었다. 그래서 싸울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A에게 합의를 추천했다. 수 백만원 들여서 변호사 고용하고 가끔 병원도 비우고 몇 년 동안 그 소송에 신경쓰고 하는 비용보다는, 차라리 몇 백만원에 빨리 합의보고 병원 일에 매진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원고 변호사에게 연락을 해서 400만원에 합의를 보게 주선을 했다.

최근 소송에서 잇달아 퍼블리시티권을 인정받지 못한 연예인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수지, 손담비, 유이, 제시카. 한국일보 자료사진.
최근 소송에서 잇달아 퍼블리시티권을 인정받지 못한 연예인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수지, 손담비, 유이, 제시카.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런데 몇 해만에 분위기가 다시 바뀌고 있다. 수지(수지모자 사건), 손담비, 이지아, 수애, 제시카, 원더걸스, 박시연 등이 제기한 소송에서는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원고 즉 연예인들을 패소시키고 있는 것이다(이 기사를 접하면서 A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합의를 주선하지 말고 그냥 같이 싸우자고 할 것 그랬나…).

왜 퍼블리시티권이 인정되지 않는 분위기로 변한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법원 입장에서 소송이 남용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연예기획사들이 법원을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른 바 장 조정에 나선 것 아닌가 싶다.

솔직히 나도 A의 소장을 받아보았을 때 조금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뭘 치사하게 이런 것 가지고 돈벌이를 하겠다고 2,000만원이나 청구하나. 돈도 잘 벌면서…' 싶었다.

그런데 수지도 지고, 수애도 지고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다. 그것은 내가 그들의 팬이어서 그런 게 아니다. 작은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다. 몇 달 전 내 차 내외부를 1시간 동안 손세차한 분이 땀을 뻘뻘 흘리며 내게 3만원을 요구하시는데, 이게 아닌데….싶었다. 분명 더 많은 대가를 받을 필요가 있는 서비스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가 서비스, 나아가 무형의 자산에 지나치게 박한 대가를 지불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연달아 들었다.

그러고보니 사람들은 법조인들에게 아주 쉽게 법률지식을 묻는다. 당연히 공짜로. 묻는 이들 입장에서는 그깟 말 몇 마디 하는 게 뭐 그리 힘드냐는 입장이다. 하지만 아는가? 변호사들은 그 지식을 팔기 위해 힘들게 공부한 사람들이다.

성악가 조수미도 난처함을 토로한 적 있다. 아주 쉽게 사람들이 노래 한 곡 부르라고들 한다. 하지만 조수미는 프로 중의 프로이고, 따라서 돈을 받고 노래하는 사람이다. 그녀의 청아한 목소리를 듣고 싶다면 대가를 지불할 각오를 하는 것이 맞다.

우리나라는 무형의 자산에 대해 지나치게 박한 대가를 지불하려 한다. 프로 중의 프로인 성악가 조수미도 난감함을 토로한 적이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우리나라는 무형의 자산에 대해 지나치게 박한 대가를 지불하려 한다. 프로 중의 프로인 성악가 조수미도 난감함을 토로한 적이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럼 연예인들은? 그들은 돈을 받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다. 자신의 얼굴, 음성, 신체의 매력을 대중에게 제공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 사람들이다. 그런 연예인들의 사진을 이미 찍혀있는 사진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이용하는 것. 그것은 택시운전을 하는 분께 어차피 가는 길이니 태워달라고 하는 형국이고, 요리하고 있는 셰프에게 어차피 불 올린 김에 라면 좀 끓여달라는 꼴이다. 그것도 그 사진을 어디 아름다운 공익을 위해 쓰는 것도 아니고 병원의 돈벌이를 위해 사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데, 연예인들 입장에서 그 가치를 지불해 달라고 하는 것 어찌보면 당연하다 싶다.

생각이 이렇게 미치다보니 요즘 법원이 퍼블리시티 인정을 소극적으로 하려는 분위기가 조금 아쉽다. 법원 입장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이참에 무형의 자산에도 당연히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게 법원의 책무가 이닐까 싶어서 그렇다(참고로 손세차 하신 분께는 좀 더 정당하다고 생각되는 금액을 얼마 더 드렸다). 변호사

● 잠깐 법률상식

초상권은 무엇이고, 퍼블리시티권은 무엇인가. 초상권이라는 것은 자신의 초상(얼굴, 신체, 음성 등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특성)이 허락없이 공표되거나 사용되지 않을 권리이고, 초상권을 침해한 경우 “정신적 손해” 즉 위자료를 배상하게 된다. 반면 퍼블리시티권은 자신의 초상이나 기타의 그를 특징지을 수 있는 동일성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통제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로, 초상권에 재산권이 합하여진 권리라고 보면 된다. 한마디로 자신의 초상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이다. 역시 미국에서 생겨난 권리답다. 따라서 퍼블리시티권이 침해된 경우 위자료가 아니라 재산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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