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는 미얀마의 라도이코 아브라모비치 감독과 대화를 나눴다. 그는 80년대 잉글랜드리그에서 골문을 지켰던 골키퍼 출신이다. 그는 현 프리미어리그인 디비전1에서 뛰었는데, 당시에는 외국인 골키퍼가 매우 드물었던 시절이었기에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10년 가까이 싱가폴 감독을 맡기도 했던 그는 아시아 축구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브라모비치 감독은 손흥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가장 위험한 선수로 역시 손흥민을 지목했는데, 미얀마 같은 팀이 손흥민을 상대하는 것 자체가 커다란 이슈로 받아들여지는 듯했다. 미얀마 선수들이 UEFA 챔피언스리그-분데스리가 상위 클럽에서 뛰는 선수와 맞서는 자체가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아시아 무대에서 손흥민은 보통 선수와는 차원이 다른 무게를 상대에게 안길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슈틸리케 감독이 이번 경기에서 손흥민을 선발로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고 피곤하다
지난 1~2개월 동안 손흥민의 컨디션은 정상이 아니었다. 레버쿠젠에서의 경기력 자체가 좋지 못했고, 대표팀에서 치른 지난 3번의 평가전은 최하의 플레이나 다름없었다.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다. 손흥민은 월드컵과 아시안컵에 참여하며 한국과 유럽을 너무 많이 왔다 갔다 했다. 특히 독일에서 호주로 갔다가 한국을 들러 다시 독일로 돌아간 여정은 최악이었다.
더 중요한 점은 그가 매주 분데스리가라는 최고 수준의 리그에서 경쟁했다는 사실이다.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정신적-체력적 소모도 상당했다. 손흥민에게 주어진 짐은 보통의 한국 선수들보다 훨씬 무겁다. 냉정하게 말해 K리그, J리그 혹은 중동에서 뛰는 선수들의 경기 숫자와 육체적 피로는 손흥민과 비교될 수 없다. 손흥민은 지쳤다. 아니, 지친 것 이상이다. 우리 모두 그가 어떻게 방전됐는지 잘 알고 있다.
2. 손흥민이 꼭 필요한 경기가 아니다
이 경기가 미얀마 수도 양곤에서 열린다면 이야기가 달랐을 것이다. 3만 명의 열혈 축구 팬들이 모여 뜨거운 분위기를 만들어내기에 미얀마의 객관적인 축구 실력과 관계없이 어려운 분위기가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다. 나는 양곤에서의 경기를 취재하며 그 분위기를 실제로 느껴본 적이 있는데 생각 이상으로 강력했었다. 물론 그래도 한국이 이기겠지만 경우에 따라 어려운 순간들을 맞이할 수 있다.
하지만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경기는 훨씬 손쉽다. 경기장은 거의 텅 빌 것이 예상되며 한국 팬들의 숫자는 양곤에서의 경기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이러한 조건이라면 미얀마는 한국의 손쉬운 상대가 될 수밖에 없다. 홈그라운드 특유의 분위기와 팬들의 함성이 없다면 미얀마의 축구 수준으로 한국을 상대한다는 것은 매우 벅찬 과제다. 이러한 조건의 경기에서 피곤하고 지친 손흥민을 굳이 기용해야 할 까닭이 있을까?
3. 정 필요하다면 경기 후반부에 투입할 수 있다
방콕은 한국의 여름보다 훨씬 더 습하기에 유럽 시즌을 막 끝낸 선수가 풀타임을 뛰기에는 고통스러운 기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경기 종료 30분을 남기고 한국이 득점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나오면 손흥민이 교체로 들어가 해결사 역할을 할 수 있다. 미얀마 선수들도 지쳐가는 시점이기에 손흥민이 휘젓고 다닐 공간이 충분히 나올 것이다. 이 시점에서 등장하는 손흥민의 파괴력은 경기 초반보다 더 무섭게 작용할 수 있다 (미얀마는 경기 후반부에 지쳐 제대로 못 뛰는 일이 잦았던 팀이다. 이러한 체력 문제가 그들의 약점으로 작용한 적이 꽤 있다)
손흥민이라는 이름 때문에 수비수들이 그에게 너무 집중한 나머지 다른 선수들의 공간이 열릴 수도 있다. 미얀마의 입장에서는 피곤하건 안 하건 간에 손흥민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긴장할 수 있는데, 체력이 떨어진 경기 막판이라면 더 커다란 영향력이 만들어질 것이다.
4. 미얀마를 위한 약간의 심리전
손해 볼 게 없는 전략이다. 손흥민은 한국의 유명 스타이기에 미얀마 선수단은 손흥민의 선발 출전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을 것이다. 손흥민이 선발로 나오지 않으면 미얀마는 ‘아... 부상을 당했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전반이 끝나고 손흥민이 몸을 풀고 있으면 선수단 전체에 심리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다. 미얀마 선수단과 코치진은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이러한 요소 자체가 승리에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5. 선수의 미래를 위하여
손흥민은 휴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이제 곧 달콤한 휴가를 누리게 될 것이다. 물론 레버쿠젠 구단의 마음을 헤아리고 기쁘게 해주는 것이 슈틸리케 감독의 업무는 아니다. 그래도 레버쿠젠은 손흥민이 미얀마전에 선발로 나서지 않으면 안도의 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러한 배려가 언젠가 레버쿠젠의 또 다른 배려로 돌아올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프로 구단의 운영은 비즈니스이기에 그러한 일을 기대하는 게 무리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또 사람들의 관계이기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6. 다른 선수들을 향한 메시지
슈틸리케 감독은 손흥민의 능력을 극대화해 사용하는 방법을 파악했을까? 손흥민은 대표팀에서 어떤 플레이를 해야 하는지 확실히 이해했을까? 나는 두 질문에 모두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번에 손흥민을 선발에서 제외함으로써 대한민국의 모든 국가대표급 선수들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이름값과 과거의 실적에 관계없이 대표팀에서의 최근 경기력이 최상이 아니면 누구라도 제외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할 수 있다는 말이다. 기존의 주전급 선수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게 될 것이며, 그 위치에 올라서려 하는 선수들은 ‘정해진 주전은 없다’는 희망과 더욱 노력하는 자세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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