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 업체 12곳 참여 공동판매
메르스 때문에 개업식 잠시 뒤로
"동포가 만들었다는데…" 고객 발길
"제품의 질·가격으로 정면승부
안정적 생산기지임을 보여주고파"

“이거 정말 ‘위’에서 내려온 거요? 그럼 우리가 사줘야지. 한 동포가 만들었다는데.”
6ㆍ15 남북공동선언 15주년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북촌 입구 골목. 철길이 깔려 있는 독특한 입구의 2층 건물 ‘개성공단 상회’를 보자마자 80대 할아버지가 한달음에 들어섰다. 젊은 사람들이나 입을 법한 등산복 티셔츠와 청바지, 양말 등을 잔뜩 골라 담은 그는 “북한 사람들이 개성에서 만들었다고 하니 괜히 설레고 신기하다”며 “자식과 친구들에게 골고루 선물할 생각”이라고 자랑했다.
지난달 23일 개성공단 입주업체 12곳이 참여해 만든 공동 판매 직영점인 개성공단상회가 처음 문을 열었다. 15일 상회 개업식을 대대적으로 열려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때문에 일단 연기한 상태다.
2013년 개성공단 가동 중단 사태 등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지레 겁 먹은 바이어들이 미리부터 거래를 끊겠다고 통보해오거나 물량을 대폭 줄이는 일이 반복되며 어려움을 겪은 업체들이 합심해 안정적인 판로 개척에 나서고자 만든 게 개성공단상회다. 이종덕 개성공단상회 부이사장은 “천안함, 연평도 포격 사건 때도 개성공단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는데 하도 믿지 않으니 이 참에 우리가 얼마나 안정적인 생산기지인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개성공단상회는 125개 입주업체 중 2,000만원의 출자금만 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협동조합 형태다. 판매 수익 일부는 사회에 환원할 계획도 갖고 있다. 다양한 업체가 모인 만큼 파는 물건 역시 경계를 넘나든다. 매장엔 정장과 청바지가 뒤섞여 있는가 하면, 속옷 옆에 보석함이 배치돼 있는 식이다. 조만간 참기름 등 식재료도 판매할 예정이다.
제정오 개성공단상회 운영이사는 “시중에도 북한 개성공단에서 만든 제품들이 다양하게 나와 있지만 막상 어디서 만들었는지 알고 구입하는 소비자들은 드물다”며 “상회를 연 것도 제품의 질과 가격을 따지는 정면승부를 통해 개성공단에 대한 각종 불신 편견 오해를 깨트리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고 말했다.
그가 이렇게 제품에 자신감을 갖기까지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2007년 처음 공단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생산성은 차치하고, 제품 불량률 자체가 높아 운영에 애를 먹었다. 어느 정도 다를 것이라 각오는 했지만 북측 노동자들이 보여주는 노동과 시장경제에 대한 인식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접근하다 보니 갈등이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다. 북한 출신의 작업반장 격인 ‘직장장’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지시를 내려 목표치와 책임감을 높여 나가거나, 인센티브로 근로 의욕을 더욱 고취시키다 보니 조금씩 달라졌다. 이제는 불량품도 거의 없고, 납기일이 코 앞이라고 하면 야근까지 자처할 정도로 책임감도 생겼다. 개성공단 북측 노동자들은 보통 한 기업에 배치되면 인사 이동이 없이 수년째 같은 곳에서 일하다 보니 이제는 서로 농담도 할 만큼 편한 사이가 됐다고 한다.
개성공단을 탄생시킨 6ㆍ15 공동선언 15주년을 맞아 개성공단 입주업체들은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데 개성공단이 ‘마중물’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제 이사는 “개성공단에선 남과 북이 매일 서로 차이를 좁혀 나가며 작은 통일을 이뤄나가고 있다”며 “상호 신뢰를 쌓아 나가다 보면, 남북관계도 희망적으로 변할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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