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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금리 인하, 그 후

입력
2015.06.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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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한국은행은 지난 4월 말 기준 서울과 수도권 지역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300조9,568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5조1,246억 늘었다고 발표했다.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 따른 결과지만, 앞으로 금리가 오르면 대출자들의 부담이 커져 금융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진은 지난달 서울 송파구 장지동 복정역 인근 위례 신도시 모델하우스 밀집 지역내 이동식 중개업소인 '떴다방'에서 방문객들이 상담을 받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14일, 한국은행은 지난 4월 말 기준 서울과 수도권 지역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300조9,568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5조1,246억 늘었다고 발표했다.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 따른 결과지만, 앞으로 금리가 오르면 대출자들의 부담이 커져 금융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진은 지난달 서울 송파구 장지동 복정역 인근 위례 신도시 모델하우스 밀집 지역내 이동식 중개업소인 '떴다방'에서 방문객들이 상담을 받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친구 P가 집을 장만한 건 2012년 봄이었다. 사회 생활을 시작한 지 만 16년, 결혼한 지 12년 만이었다. 그 때, 그 녀석은 술에 기대어 눈물을 쏟았다.

사실, 소득으로만 보면 P는 중산층 그 이상이었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금융회사에 몸을 담고 있었으니, 모르긴 해도 연봉 수준은 우리나라 근로자의 상위 10, 20%에는 족히 포함됐을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소득이 삶의 질을 좌우하는 건 아니다. 그 녀석의 삶은 늘 팍팍했다. 3명이나 되는 자식들 교육비에, 양가 부모님 생활비에, 그리고 집을 장만하기 위해 꼬박꼬박 들어야 하는 적금까지. 본인을 위해서는 변변한 옷 한 벌 제대로 사 입는 걸 별로 본 적이 없다.

집에 대한 P의 강한 열망은 유년시절 잉태됐다. 다섯 식구가 월세 단칸방을 전전하며 보내던 그 시절, 가장 친한 친구에게조차 비루한 삶의 공간을 내보이는걸 극도로 기피했다. 때때로 밀리는 월세에 집주인으로부터 온갖 수모를 겪는 부모님을 보며, 집이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간에 부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현실을 목도하며 P에게 ‘내 집 마련’은 그 무엇도 대체할 수 없는 인생 목표가 됐다.

그럼에도 난 그때, 마음 속 깊이까지 축하를 해줄 순 없었다. 말은 안 했지만, 그가 구입한 집이 은행과 ‘공동 소유(?)’가 아닌, 그 녀석만의 온전한 집이 되기 위해서는 이후에도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우려했듯, 지금도 P의 삶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외려 더 쪼들린다. 학년이 높아진 아이들 교육비는 더 늘었고, 쥐꼬리만한 수입도 없어진 부모님들에게 보내드려야 하는 생활비도 많아졌다. 집을 사기 위해 매달 꼬박꼬박 납입하던 적금 역시 지금은 매달 갚아 나가야 하는 대출상환금으로 대체됐을 뿐이다. 그 빚을 다 갚을 때쯤, P는 직장에서 이미 은퇴한 뒤일지도 모른다. 집을 사기 전에도, 사고 난 후에도 평생을 그렇게 집 한 채에 옭매여 사는 셈이다.

어디 그 녀석뿐이겠는가. 지금 너도 나도 집을 사고 있다. 가진 돈이 늘어나서가 아니다. 치솟는 전셋값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또 금리가 낮으니 이 참에 돈을 빌려 집을 사라는 정부의 유혹에 떠밀려 하나 둘 내 집 마련 대열에 동참한다.

이 와중에, 한국은행은 지난 주 또다시 기준금리를 내렸다. 경기 회복이 기대에 못 미치는 터에 엔저(低)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까지 가세했으니, 경기 부양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무서운 속도로 불어나고 있는 가계부채는 더 가파르게 증가할 것이고, 이렇게 빌린 돈으로 집을 사겠다는 이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무언가 가계부채를 억제하기 위한 강화된 규제가 필요하다고 모두들 경고하지만, 정작 정부는 브레이크를 밟긴커녕 여전히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뗄 생각도, 의지도 없는 듯하다.

내리는 게 반갑다면, 오르는 건 그만큼 고통이다. 머지 않아 금리가 오르기 시작한다면? 집값까지 하락세로 돌아선다면? 여기저기서 ‘억’ ‘억’ 하는 비명이 터져 나올 것이다. 그리고 P를 필두로 내 집 마련 행렬에 동참했던 수많은 이들은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벼랑 끝으로 내몰릴 것이다.

이미 뇌관이 터지기 시작한 뒤엔 정부가 손 쓸 수 있는 카드는 별로 없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한쪽에서는 빚을 탕감해주고, 다른 쪽에선 또다시 빚을 유도해 집값을 떠받치는 것 정도가 아닐까. 그렇게 우리 사회에선 하우스 푸어가 또다른 하우스 푸어를 낳으며 끊임없이 확대재생산 된다.

이영태 경제부장 yt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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