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서 교육부 조치에 제동
서울 강남에 있는 ‘소수정예’ 고액 학원의 수강료를 일정 수준으로 낮추라는 교육당국의 강제명령은 위법하다는 항소심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교육당국에서 정한 적정 수강료 기준에는 합리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취지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학원비 인상에 제동을 걸기 위한 학원 수강료 조정명령 제도에 손질이 가해질지 주목된다.
서울고법 행정7부(부장 황병하)는 학원 운영자 정모씨가 서울시강남교육지원청을 상대로 낸 수강료 조정명령 취소 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4일 밝혔다.
정씨는 서울 강남구에서 언어ㆍ영어ㆍ수학 등을 가르치는 학원 두 곳을 운영했다. 각 강좌당 5명의 학생만 받는 소수정예 학원으로, 교육지원청 가이드라인의 적정기준(강의실 1㎡당 1명)보다 훨씬 더 적은 인원(2.67㎡~3.8㎡당 1명)을 수용했다. 월 수강료는 한 학원이 34만원(1분당 300원×1,134분), 다른 학원은 56만원(1분당 247원×2,268분)이었다.
2013년 11월 교육지원청은 수강료가 너무 비싸다며 “1분당 238원으로 인하하라”고 명령했다. 교육당국은 ‘학원의 설립ㆍ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자체 심의를 거쳐 책정한 조정기준액을 제시하면서 수강료 인하를 명할 수 있다. 조정기준에 따른 학원비는 월 27만~54만원 수준이다. 정씨는 이에 “강좌당 수강생을 5명으로 제한하면서 교사들의 자질과 수강생 수준, 학원 만족도 등을 고려해 교습비를 책정했는데, 이를 내리면 임대료와 강사료를 감당 못해 적자가 불가피하다”며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수강료 조정명령 제도는 사교육비 고액화를 방지하고 비정상적인 교육투자로 인한 인적ㆍ물적 낭비를 줄이는 데 그 목적이 있다”면서 해당 처분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소수정예 학원의 고액 교습비 수령을 방지해 교습경쟁 과열과 사교육 기회의 차별을 최소화하고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여서 정당성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피고는 2012년 5월 직권으로 교육과학기술부장관 및 서울시교육감의 지침을 반영해 전수조사결과 가장 낮은 교습비부터 70% 지점의 금액으로 기준액을 책정했지만, 이것이 합리성 있는 금액이라고 인정할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물가 상승률과 전년도 대비 교습비 상승률, 교습시간 등을 모두 고려해 수립된 기준금액이라 인정하기 부족하고, 이 사건 학원의 교습비가 기준교습비를 초과했다고 해서 ‘과다하다’고 보기도 어렵다”면서 수강료 조정명령을 취소하라고 주문했다.
교육당국의 수강료 조정명령에 대한 학원들의 불복 소송에서 법원이 학원 측의 손을 들어주는 일은 다반사다. 지난해 10월에도 서울행정법원은 박모씨 등 9명이 “분당 174~479원의 교습비를 분당 174~324원으로 인하하라는 조정명령을 취소해 달라”며 강남교육지원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해당 재판부는 “운영을 부실하게 하면서 수강료를 높게 받는 학원이라면 학습자가 이를 선택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이라며 “시장 원리에 맡겨둘 일”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관진기자 spiri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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