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작정하고 클래식 선율 속에 잠기면 이 세상이 사뭇 낯설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누가 연주한 누구의 몇 번 교향곡 어쩌구 썰 풀면서 ‘전문가연’하려 들기엔 과문하고 중구난방이다.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다. 솔직히 누구의 작품인지 모르고 들을 때가 더 많다. 작품이나 연주의 크레딧은 찾아 듣기 편하라고 참조할 뿐이다. 그저 들리고, 들어서 느낌이 풍부해지고, 느낌이 올라 뇌가 쫀득쫀득하게 풀리면서 마음속에 안 보이던 공간이 눈과 귀를 열고 다가오는 걸 즐기면 그만인 것이다. 거기엔 필히 숙지하고 채워야 할 지식이나 허영 따위 없다. 그게 목적이고, 그걸 통해 내가 보다 그럴싸한 인간으로 여겨지길 꿈꾼다면 외려 귀가 막히고 마음이 조급해져 엉터리로 분칠한 허수아비나 다를 바 없어질 거라 믿는다. 클래식이든 팝이든 음악의 위대함은 그것을 통해 한 사람이 지금 당장 보이고 들리는 것 이상의 세계를 홀로 그려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모르는 게 약인 경우가 음악엔 더 많고, 심지어 잘 아는 선율조차 전혀 처음 듣는 파동으로 여겨질 때가 있다. 그걸 나는 종종 음악이 보여주는 낯선 거울이라 믿는다. 정면에 대한 역상이 아닌, 배면에 대한 정밀하고 정확한 음영이 거기엔 비친다. 그 모양은 물방울 같고 빛 같다. 음악은 이곳을 낯선 음조로 되새기는, 다른 곳의 소리인지 모른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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