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10개 이상의 크기 전기실서 교류 2만5000V → 직류 1500V로
모든 열차 손금 보듯이 보는 신의 눈은 서울 메트로 본사에
'철커덕 철커덕' 바퀴소리 없어지며 예전 철도의 느낌도 사라지고
자신이 운송되고 있다는 사실 잊어
지하철 4호선 이수역.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평범한 공간이다. 이용객 중 누구도 지하철역에 있는 많은 설비들과, 그것을 조작하고 관리하는 많은 사람들의 피땀 어린 노고에는 관심이 없다.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걷기 바쁘다. 가장 아쉬운 점은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간이 ‘죽은 시간’이 되는 점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시간과 공간은 의미 없이 빨리 보내버려야 하는 것으로 치부된다. 정말로 그럴까? 지하철 공간을 어떻게 체험하느냐에 따라 그 답은 달라질 수 있다.
전기로 달리는 지하철의 심장
이수역에서 문을 하나 열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정말 놀랍게도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4차원의 세계로 넘어가는 통로가 열리는 듯했다. 그것은 지하철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전기실이다. 직류 1,500볼트의 전기로 달리는 지하철에 전기를 공급하는 전기실은 생각보다 컸다. 학교 교실 10개 이상 크기의 방에 변압기와 정류기가 뜨거운 열과 윙윙 소리를 내며 전기를 공급하고 있었다. 한전에서 공급받은 교류 2만5,000볼트의 특고압은 이 방에 있는 변압기를 통과하면서 1,500볼트로 전압이 낮춰지고 정류기를 통과하면서 직류로 바뀐다. 온도계를 보니 전기실은 28도. 좀 덥다는 느낌이 든다. 방 한쪽에 아주 큰 냉방장치가 있다. 커다란 팬이 달린 이 냉방장치는 방의 온도가 너무 높아지는 것을 막아준다. 막대한 에너지가 변신을 하는 곳이라 열이 많이 난다. 지하철에게는 전기는 밥이다. 1863년 런던에 세계 최초의 지하철이 개통됐을 때 열차의 밥은 석탄이었다. 지하에서 석탄을 때면 많은 연기가 나오기 때문에 대용량의 환기시설이 필요했다. 이수역에도 아주 큰 환기시설이 있어서 항상 팬을 돌리며 역 구내에 맑은 공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사람이 살려면 밥만 먹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숨도 쉬어야 하니 맑은 공기는 항상 필요한 것이다.
1863년의 런던에서부터 2015년의 이수역까지, 지하철은 먼 길을 달려 왔다. 1974년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됐을 때는 전기를 공급하는 전차선과 전기를 받아들이는 집전기(팬타그래프) 사이에 스파크가 많이 일어났다. 당시의 전동차는 시내버스를 닮은 지금의 차량보다는 좀 더 터프한 느낌의 철도차량 같았는데, 차량이 어두운 터널 속으로 굉음과 스파크를 일으키며 사라지는 모습은 무서우면서 매력적이었다. 개통 후 40년이 지난 요즘 지하철 차량은 스파크를 내지 않는다. 1974년에는 전차선을 일정한 높이로 유지해주는 기술이 오늘날처럼 발달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전차선과 집전기의 간격이 일정치 않아 스파크가 일어났다. 요즘은 전차선 높이가 일정해 불꽃은 나지 않는다.
안전, 난방, 공기질 지키는 문
게다가 승객의 안전을 위해 설치된 스크린 도어 덕분에 지하철은 더 이상 철도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오래 동안 철도 매니아였던 필자로서는 힘차게 달리는 열차와 철로를 직접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어차피 인터넷으로 많은 일들이 이루어지는 21세기는 사물의 직접성과는 거리가 먼 시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철도의 체험이 아니라 편리하고 안전한 수송이니 스크린 도어는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산뜻한 장치이다.
스크린 도어는 실로 여러 사람을 살린 구세주라 할 수 있다. 우선 사람이 선로에 떨어지는 사고를 완벽히 막아준다. 사람이 선로에 떨어지는 사고는 기관사에게는 엄청난 트라우마를 가져다 준다. 스크린 도어는 사고를 당한 사람과 기관사를 다 구한다. 그리고 선로와 승강장을 어느 정도 차단하기 때문에 난방 효과가 있다. 선로를 달리는 차량은 항상 먼지를 일으키는데 스크린 도어가 그것을 막아 승강장의 공기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효과도 있다. 스크린 도어가 일석삼조의 효과를 내는 것이다.
운행 지령을 내리는 두뇌
지하철 차량은 전기를 밥처럼 먹으며 달리지만 사람이 밥만 먹고는 살 수 없듯이 지하철도 전기만 대준다고 마냥 달리는 것은 아니다. 밥을 먹은 사람은 그걸 소화시키기 위해 움직여야 하고, 그 움직임은 뇌의 지령을 받아야 하듯이 지하철에도 지령을 내리고 그 지령이 잘 실행되고 있는지 살피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이수역에 이웃한 동작역에 지하철의 두뇌가 있었다. 그것은 모든 지하철 차량의 운행상태를 알 수 있는 모니터였다. 그 모니터에는 동작역 앞뒤로 어떤 차량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200m씩 끊어진 폐색구간의 적정 속도는 얼마인지 보여준다. 폐색구간이란 열차의 추돌사고를 막기 위해 다른 열차가 들어와서는 안 되는 구간이다. 한 열차의 200m 거리 안에는 다른 열차가 들어오면 안 된다. 다른 열차가 폐색구간에 접근하고 있으면 신호기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그러면 즉시 서야 한다. 제동거리가 긴 철도의 특성 상 앞 열차를 봤을 때는 이미 늦다.
폐색구간의 개념을 놓고 보면 철도는 시베리아 호랑이를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시베리아 호랑이는 행동반경이 넓기도 하지만 자신의 구역 안에 다른 호랑이가 들어오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그래서 구역을 침범한 다른 호랑이는 반드시 격퇴해 버리는데, 철도차량이 딱 이런 팔자다. 하긴 철도나 호랑이나 다 기가 센 존재들이니 서로 닮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 호랑이의 눈이라 할 수 있는 모니터는 모든 열차에 대한 정보를 손금 보듯이 보여준다. 보여줄 뿐 아니라 명령도 하고 제어도 한다. 각 폐색구간에는 그 구간을 통과할 수 있는 최대속도가 표시된다. 역에서 가까우면 속도가 느리고 멀어질수록 빨라진다. 그 수치는 열차의 운전실에 보내져서 기관사는 그 수치에 맞춰서 속도를 조절하게 된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이 모든 상황을 다 보고 있는 존재가 있을까. 4호선 노선에 동시에 여러 편의 차량들이 달리고 있는데 이것들은 제각각 적절한 간격과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전노선의 상황을 살피고 있어야 한다. 동작역에 있는 모니터는 동작역 중심으로만 보여줄 뿐이다. 모든 차량들의 상황을 보여주는 모니터는 방배동에 있는 서울메트로 본사 상황실에 있다고 하는데 보안등급이 높아서 들어가 보지 못했다. 서울시라는 신체의 신경망 혹은 동맥 같은 곳이므로 극히 민감한 곳이다. 짧은 방문으로 다 알 수는 없었지만 지하철의 운행을 지시하고 판단하는 프로그램은 꽤나 복잡할 것 같다. 전에 어떤 일본만화에서 도쿄의 지하철이 하도 복잡하니까 어딘가에는 4차원의 다른 세계로 통하는 비밀의 통로가 있다고 했는데 서울 지하철도 그 복잡도가 만만치 않다. 서울 전체에 400여개의 역이 있다고 하니 말이다. 그 모든 것을 관장하는 신의 눈이 서울메트로 본사에 있는 것이다.
덜컹거리지 않는 지하철 레일
사람들은 철도의 추억 하면 철커덕 철커덕 규칙적으로 나는 바퀴소리를 떠올린다. 그런데 수도권 전철에서는 그런 바퀴소리를 들을 수 없다. 추억을 되새기려고 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술발전의 결과로 그런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다. 사실 철도의 바퀴소리는 철도의 이음매를 차륜이 지나 갈 때 나는 충격음이다. 엔지니어링의 관점에서 보면 그 소리는 없애야 할 장애물이다. 요즘의 철도에서는 그 소리가 많이 제거됐다. 길이가 최대 2,500m에 이르는 초장대 레일을 쓰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생산하는 철도레일은 길이가 20m다. 장대레일이란 그걸 용접으로 이어 붙여서 이음매를 없앤 것이다. 그리고 레일과 레일 사이의 이음매는 신축이음매라는 걸 쓰는데, 이건 레일이 딱 끊겨 있는 기존의 이음매와 달리 칼날 같이 길고 가는 두 개의 레일이 서로 엇비슷하게 맞물려 있다. 그래서 이음매를 지날 때 충격음이 나지 않는다. 그 덕에 승객들은 철커덕거리는 추억의 열차가 아니라 스마트폰에 집중할 수 있는 21세기의 첨단 운송수단을 경험하는 것이다. 사실은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운송되고 있다는 것을 잊는다. 기계의 편리함이 기계를 잊게 만드는 아이러니가 21세기 기계의 운명이다. 사람들이 전혀 모르고 있는 사이 우리는 새로운 기계의 패러다임을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영준 계원예술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