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로 신체리듬 깨지거나 스트레스·피로 누적 때 발병
초기 증상 감기와 비슷하지만 치료시기 놓치면 합병증 위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맹위를 떨치는 요즘, 발열 근육통 등 감기와 비슷한 증세가 나타난 사람들이 ‘내가 혹시…’하면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런 증상이 50대 이상 연령층에서 나타난 경우라면 놀라움은 더하다. 인체 면역력이 떨어질수록 메르스 바이러스의 침입에 더 취약하기 때문이다.
‘칼로 쑤시는 듯한 극심한 통증’으로 흔히 묘사되는 대상포진도 메르스처럼 면역력이 떨어진 50대 이상 연령층을 호시탐탐 노리는 질병이다. 초기 증상이 감기와 비슷하다는 점도 닮은꼴이다. 한낮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더위가 이어지는 요즘에는 신체 리듬이 깨져 면역력이 더 떨어질 수 있으므로 중년과 노년층은 대상포진 발병 가능성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대상포진은 수두대상포진바이러스가 원인으로, 발병에는 인체 면역력이 깊숙이 관여한다. 수두대상포진바이러스는 어릴 적 수두를 앓은 사람의 몸 속 신경절에 잠복해 있다가 인체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활동을 재개하기 때문이다. 수두대상포진바이러스의 활성화 스위치를 끄느냐 켜느냐 여부는 인체 면역력이 좌우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인체 면역력이 낮은 사람이 대상포진 고위험군이다. 당뇨 등을 앓는 만성 질환자와 폐경기 여성, 수술 경험이 있는 환자, 50대 이상 연령층이 이에 속한다. 최근 논문(2104, Journal of Research in Health Sciences)에 따르면 대상포진 가족력이 있는 경우 발병 위험이 최대 6배 높아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무더위로 인해 신체리듬이 깨진 경우,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여행이나 과중한 업무로 피로가 누적된 경우 등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발병하기 쉽다.
통계를 봐도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대상포진 발병률이 올라감을 알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14년 대상포진 진료인원 통계에 따르면, 50대 이상이 약 39만 명으로 전체 환자의 60%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상포진에 따른 증상은 ‘대상(帶狀)’ 이라는 병명에서도 알 수 있듯 몸의 한쪽에 띠 모양으로 생겨난다. 통증과 함께 수포나 발진이 옆구리 등 가슴 등에 생겼다면 병원을 찾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항바이러스제로 치료하는데, 발병 후 72시간 내 투여해야 통증의 강도와 합병증 위험을 낮출 수 있다. 통증이 심각한 상태라면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하기도 하고 신경 차단술을 시행해 통증을 느끼지 못하도록 신경을 절단하기도 한다.
대상포진은 신경절이 있는 신체 어느 부위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데, 발병 부위에 따라 다양한 합병증을 동반한다. 대상포진 환자 중 10~25%가 겪는 안면 대상포진의 경우 각막염 결막염 녹내장을 유발함은 물론 뇌졸중 위험을 4배까지 높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외에도 간염 심근염 관절염 등 다양한 합병증을 남긴다.
대상포진 증상은 신경절을 타고 진행하기 때문에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상포진의 급성 통증과 환자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한 연구에 따르면, 대상포진 환자 96%가 급성 통증을 겪고, 이들 환자 중 45%는 통증을 매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증의 정도도 심각해 대상포진의 급성 통증은 출산통보다, 만성 통증에 해당하는 대상포진 후 신경통은 만성 암 환자의 통증보다 심한 것으로 보고됐다.
대상포진은 여름에 발생이 잦다. 더위에는 냉방기 가동으로 인해 실내외 온도차가 커지면서 면역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초기 증상이 발열 근육통 등 감기와 비슷하다 보니 자칫 치료 시기를 놓쳐 합병증 위험을 키울 우려가 있다. 감기나 단순 피부병으로 오인해 치료 시기를 노치게 되면 가장 흔한 합병증인 ‘대상포진 후 신경통’의 위험이 높아진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은 피부 병변이 치료된 이후 1개월 이상 지속되는 통증으로, 60세 이상 환자 10명 중 많게는 7명이 경험한다. 옷깃이 스치기만 해도 아픈 만성적인 통증은 옷을 입거나 외출을 하는 등 일상생활을 어렵게 만들고 수면 방해나 우울증 등 2차적 문제를 불러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
그래서 대상포진은 발병 전 막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면역력을 강화할 수 있는 생활습관을 꾸준히 유지해야 한다. 가벼운 운동과 영양가 있는 식단, 규칙적인 수면으로 신체리듬을 유지하는 한편, 음주 흡연 과로 등은 되도록이면 피한다.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은 대상포진 발병 위험이 올라가므로 평소 건강 관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박경찬 분당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대상포진은 면역력 저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50세 이상 중년층과 폐경기 여성, 수술 후 환자 등 고위험군은 수면장애 탈수증 등으로 신체 피로도가 증가하는 여름철에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대상포진에 따른 증상은 피부병이나 감기와 비슷하다 보니 치료시기를 놓쳐 병을 키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극심한 통증이 띠 모양의 붉은 수포와 함께 나타날 경우에는 즉시 병원을 찾아야 후유증 발생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송강섭기자 erics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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