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습격사건
광우병·천연두·사스·콜레라 등 미생물의 인간사회 침투과정 밝혀
정보 공개· 통합의료시스템 강조
대혼란
세계화·생물무역이 창궐 원인
"사스는 병원에서 만들어진 질병"
'응급실병' 메르스 유행 예측 적중
조류독감-전염병의 사회적 생산
습지 파괴·기업형 축산·슬럼화 등
AI는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연관
백신 수급 시장원리에 종속 비판
메르스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다. 메르스보다 더 빠르게 불안과 불신이 퍼졌다. 못 믿을 당국 대신 각자 알아서 살아남는 수밖에 없다고 다짐하며 외출을 자제하는 당신에게, 메르스에 대처하는 자세를 가다듬는 데 도움이 될 책들을 권한다. 인류를 위협하는 각종 전염병과 이를 조장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관해, 아울러 낙타가 억울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들이기도 하다. 단언컨대, 낙타는 잘못 없다.
내일이면 늦으리
미국의 의사 겸 물리학자 앨런 젤리코프와 기술ㆍ비즈니스 분야 저술가 마이클 벨로모가 함께 쓴 ‘바이러스 습격사건’(송광자 옮김, 알마, 2011)은 “수세기 동안 열등한 동물에게만 나타나던 미생물이 지난 10~15년간 일어난 변화 탓에 인간이 거주하는 도시와 농장, 집 그리고 인체에까지 침투하게 된 과정을 알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책이다.”(서문)
광우병, 천연두, 콜레라, 사스, 신놈브레바이러스, 웨스트나일바이러스 등 친숙하거나 낯선 다양한 사례를 다룬 이 책은 대유행병 시대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각 병원균의 생성과 확산 경로 등을 상술하고 방역 시스템을 강조한다. 방역의 핵심은 두 가지, 신속한 정보 공개와 통합 의료 시스템이다. 유행성 전염병은 언제 머리 위에서 떨어질지 모르는 ‘다모클레스의 칼’과 같아서 ‘며칠이 아니라 한시가 급하다’며 발생 즉시 신속하게 확산 고리를 끊어야 하고, 그러자면 정보 공개가 필수라고 강조한다. 통합 의료의 바탕은 공중보건 전문가와 의료 전문가의 긴밀한 협력이다. 구체적이고 생생한 사례로 이를 뒷받침한다. 메르스 늑장 대응과 정보 차단, 관련 부처 간에도 손 발이 안 맞는 오작동을 보여준 한국 정부 당국의 자세는 그 반대라 하겠다.
인간이 자초한 바이러스 파티
캐나다 기자 앤드류 니키포룩이 쓴 ‘대혼란’(이희수 옮김, 알마, 2010)은 21세기를 위협하는 유행병에 대한 보고서다. 인류를 위협하는 온갖 바이러스를 ‘생물학적 침입자’라고 부르면서 세계화와 생물무역이 침입자의 발걸음에 가속을 붙이고 있다고 경고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사고 파는 전 지구적 거래 때문에 샌드위치 한 조각, 여행 가방 하나, 화물 컨테이저 박스 뒤에 재앙이 도사린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고, 성대한 바이러스 파티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한국의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사스를 다룬 제 9장이다. 호흡기 바이러스가 응급실 병동을 돌아다니고 병원 밖으로 진출해서 대유행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사스는 병원에서 만들어진 질병이라고 단언한다. “병원 침입균이 날이 갈수록 번성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지역사회로까지 마수를 뻗치려고 안달하는 상황으로 보건대 다음번에 유행할 전염병은 사스가 그랬던 것처럼 환자들로 북적거리는 응급실이나 요양 시설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는 저자의 예측은 이번 메르스 사태로 딱 맞아 떨어졌다. 한국 독자들은 생물무역을 재고하고 지역 기반의 삶을 되살려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보다 저자가 책 맨뒤에 덧붙인 말이 더 눈에 들어오겠다. ‘병원 감염의 위험을 줄이는 14가지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메르스 대처에 도움이 될 또다른 책으로 미국의 도시사학자 마이크 데이비스가 쓴 ‘조류 독감-전염병의 사회적 생산’(정병선 옮김, 돌베개, 2008)이 있다. 저자는 조류 독감이 전 지구적 자본주의 문제와 다층적으로 얽혀 있는 우리 시대의 질병임을 강조한다. 바이러스 변이를 촉발하는 요인으로 습지 파괴, 기업형 축산, 제3세계의 도시화와 대규모 슬럼의 성장 등을 꼽고, 시장 원리에 지배당하는 백신 수급 체계를 비판한다. 제약업계의 전횡에 휘둘리고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따라 축소되고 있는 공중보건 체계의 결함을 변혁하지 않는 한 파국을 피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의료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의료 공공성이 추락 중인 한국이 새겨 들을 소리다.
미생물은 힘이 세다
전염병은 역사를 바꿨다. 관련 도서로 아노 카렌의 ‘전염병의 문화사’(권복규 옮김, 사이언스북스), 윌리엄 맥닐의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허정 옮김, 한울), 앨프리드 크로스비의 ‘인류 최대의 재앙, 1918년 인플루엔자’(김서형 옮김, 서해문집), 버나드 딕슨의 ‘미생물의 힘’(이재열 김사열 옮김, 사이언스북스) 등이 있다. 한국사로 눈을 돌리면 고려시대를 들여다본 ‘전염병의 문화사’(김영미 등 지음, 혜안, 2010), 19세기 조선의 ‘호환 마마 천연두’(신동원 지음, 돌베개, 2013)가 읽을 만하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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