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단어는 그림책과 아주 친하다. 할머니가 아기 앞에 펼쳐 보여주기도 하고, 어린이와 부모 셋이 나란히 앉아 읽고 볼 수 있다. 훌륭한 그림책 한 권이면 온 가족이 따로 또 함께 시시때때 영원무궁 대를 이어 즐길 수 있다. 그러니 세상 모든 그림책에는 으레 가족이 등장한다.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한 가족을 통해서 하는 이야기도 흔하다. 가족이 해체 붕괴되거나 위기를 겪는 동시대 현실이 다양한 방식으로 투사되기도 한다.
봄에 보라색 꽃이 피는 바비아나는 그 꽃말이 ‘단란한 가족’이다. ‘단란한 가족 바비아나’는 ‘바비아나’를 소재로 삼아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야말로 가족에 의한, 가족을 위한, 가족 그림책이다. 내레이터 여자 아이가 소개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의 가족 풍경이 참으로 단란하다. 벚꽃 향기 속에 비누방울 불고 자전거 타며 놀다 돌아와 화분에 꽃씨를 심는 봄, 바닷가에서 물놀이하고 할머니 댁에서 수박 먹고 나란히 마루에 누워 별 보는 여름, 단풍놀이 가서 사진 찍고 낙엽 주워 책갈피에 간직하는 가을, 함께 만든 눈사람 가족에게 목도리 둘러주고 사람 가족끼리는 서로 껴안아 따뜻해지는 겨울이 차근차근 이어진다.
파도 한 자락 일지 않는 망망대해처럼, 갈등도 반전도 없는 무사평화의 추억과 일상이 오히려 기묘한 불안을 일으키기도 한다. 글 그대로의 일 대 일 대응 그림은 얼핏 유치한 계몽적 판타지인가보다, 폄하하게도 한다. 그러나 개성적인 그림체가 성실히 담아낸 장면 장면과 다정하고 풍성한 오브제를 곰곰이 들여다보자니 문득 이런저런 파인아트 ‘가족도’가 떠올랐다. 장욱진의 ‘가족도’를 비롯한 그 명화들은 그림 그대로 ‘기도’였다.
‘단란한 가족 바비아나’ 또한 소라껍질처럼 텅 빈 이 시대의 가족 개념에 ‘빈티지’ 즉 ‘오래된 훌륭한 가치’를 구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기도하듯이 말이다. 작가 정보를 찾아보니, 다채로운 시간 풍경 속에서도 변함없이 단란한 가족을 그리고 싶었다는 제작 후기가 보였다. 그 기도의 처음에 꽃말을 발견하고 바비아나꽃을 찾아냈다는 얘기도.
이상희ㆍ시인(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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