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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연ㆍ혼인外 '新가족'의 탄생 느는데… 가족정책은 느림보 변화뿐

입력
2015.06.1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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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ㆍ시대상 반영 못한 채 제자리

가족 구성 경로 복잡해지는 추세

친밀성ㆍ관계 중심으로 재편 필요

'정상가족' 밖 개인의 삶 보호위해

법ㆍ제도 포괄적 손질할 시점

박순경(오른쪽) 이화여대 명예교수와 김애영(왼쪽) 한신대 교수가 2001년 캐나다 로키 산맥의 한 호숫가에서 찍은 사진. 사제지간으로 만나 20년 넘게 함께 살고 있는 두 사람은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서로를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김애영 교수 제공
박순경(오른쪽) 이화여대 명예교수와 김애영(왼쪽) 한신대 교수가 2001년 캐나다 로키 산맥의 한 호숫가에서 찍은 사진. 사제지간으로 만나 20년 넘게 함께 살고 있는 두 사람은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서로를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김애영 교수 제공

김애영(63) 한신대 신학과 교수는 스승인 박순경(92)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명예교수와 25년째 한 집에 산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김 교수가 이화여대 기독교학과에 입학한 1971년. 당시 김 교수는 신입생, 박 명예교수는 40대 중반의 중견 교수이자 진보적 신학자였다. 대학 사제지간이었던 두 사람이 인생의 동반자로, 혹은 모녀처럼 가족이 된 건 통일운동을 했던 박 명예교수가 1991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금되면서부터다.

11일 서울 방배동 자택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난 김 교수는 “박 선생님이 막내라 형제들이 다 세상을 떠나고 가족이 없었다. 구금 소식을 듣고 선생님이 계신 경기 안양 아파트에 살면서 구명운동을 시작했다”며 “1년쯤 옥바라지를 각오했는데 106일 만에 나오셔서 이후 한 집에 살게 됐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스승과 제자는 모녀처럼 지냈고, 청소와 빨래, 설거지는 박 명예교수가, 요리와 장보기, 공과금 계산은 김 교수가 담당했다. 김 교수는 “개방적이었던 부모님도 딸이 ‘어머니 이상’으로 여기는 스승과 함께 산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워하셨다”고 말했다. “같이 살면서 선생님은 동료, 일 얘기를 하고, 저도 제 얘기하게 되잖아요. 내 편이 생기는 거니까 안정감이 생기는 거죠.”

이제 두 사람은 떨어져 산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특히 갈수록 몸이 약해지는 박 명예교수에게 김 교수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가족이다. 박 명예교수는 지난해 12월 집 앞에서 넘어지면서 척추압박골절상을 입어 6개월째 집과 병원에서 요양 중이다. 작년 가을학기부터 1년간 안식년을 맞은 김 교수는 최대한 외부 일정을 줄이면서 간호에 매달리고 있다.

“선생님의 마지막 순간까지 제가 모실 것”이라는 김 교수는 한 가지 걱정을 털어놓았다. “나이가 들면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잖아요. 선생님한테는 제가 있지만 저한테는 그런 사람이 없다는 거죠.”

김 교수는 대학 은퇴 전까지 작은 평수의 아파트로 옮길 생각이다. “우리가 아웅다웅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경제적 어려움이 없기 때문일거에요. 연금을 받게 되면 지금보다 수입이 훨씬 적어지는데, 나이 들면 아플 수도 있어 현금을 갖고 있어야 되겠더라고요. 선생님 입장에선 이사하고 환경 바꾸는 게 굉장히 안 좋은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고 계시죠.”

▦2030년 가족 모습은?

김 교수와 박 교수 같은 가족 형태는 아직까진 주변에 흔치 않다. 하지만 15년 뒤에는 이런 가족들이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인구, 경제, 정치, 과학기술의 변화 등을 분석ㆍ예측한 ‘가족의 미래와 여성가족정책전망(2011~2014)’ 연구에 따르면 2030년에는 동년배 비혈연 노인으로 구성된 공동체 가구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또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약해지면서 법적 혼인이 아닌 사실혼 등 다양한 파트너 관계가 늘어나고, 이혼 한부모가족, 미혼 한부모가족, 재혼가족, 입양가족 등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는 현재 혈연과 혼인으로 맺어진 가족만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을 ‘정상적인 가족’으로 여기지만 15년 후엔 가족에 대한 개념 자체가 달라지고, 형태도 다양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지난해 기준 1인 가구 비율은 전체 가구의 26%에 달하고, 혼인 건수는 1985년 38만4,000여건에서 2013년 32만2,000여건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이혼은 4만2,000여건에서 11만5,000건으로, 재혼은 5만건에서 13만건으로 증가했다. 가족 형성 자체가 어려워지고, 형성 경로는 복잡해지는 것이다.

특히 2030년 가족을 구성하게 될 청소년의 절반 이상(54.4%ㆍ2015년 청소년통계)이 ‘남녀가 결혼을 하지 않아도 함께 살 수 있다’, 25%는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족에 대한 미래 세대의 인식이 기성세대와는 크게 다른 것이다.

▦현실 모르는 가족 정책

그러나 이런 변화가 우리나라 가족 정책에 반영되고 있을까. 우리나라 가족정책은 2004년 건강가족기본법 제정 이후 여성부가 여성가족부로 확대된 2005년부터 시작됐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가족 위기와 이혼 증가, 출산율 저하, 신용카드 부채로 인한 가정 파탄 등으로 심각한 ‘가족 몰락’ 상황이 벌어지자 정부 중앙부처 차원에서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가족정책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에 따른 가족 내 돌봄 문제, 일ㆍ가정 양립에 주로 초점이 맞춰졌고, 경제적 지원도 기초생활수급 가구 등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최소한의 선별적 지원만 이뤄졌다.

이마저도 아직 정책 효과가 크지 않아 가족은 여전히 출산ㆍ양육ㆍ교육ㆍ노인 부양 등 모든 돌봄 의무를 떠안고 있다.

장혜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족 형태가 변하고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개인의 삶이 위협받고 있다”며 “가족 정책은 개인이 살면서 겪게 될 돌봄 관련 위험을 예방하고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또 가족 단위로 지원하는 현행 복지제도를 개인 단위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는 “한국은 가족이 중요한 복지체계 기능을 하고 있어 ‘정상 가족’ 범주 밖의 개인은 사회복지 사각지대에 있다”며 “사회안전망을 개인 단위로 재편하고, 가족 개념도 친밀성과 관계 중심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국민연금은 아직도 ‘1가구 1연금’원칙을 고수하고 있고, 가족 중 직장인이 있으면 건강보험 피부양자가 돼 보험료를 내지 않는 등 우리 사회보장제도는 가족 단위로 설계돼있다.

가족 형태의 변화에 맞춰 가족의 범주를 넓히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민문정 공동대표는 “더 이상 정형화된 가족이 개인의 삶을 보호하지 못하는 시대임에도 복지체계와 돌봄 관계망은 가족 중심으로 제한돼 있어 개인 삶의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다양한 가족을 포괄할 수 있는 법과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남보라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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