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예금 인출 제한도 검토
연금삭감 등 거부 합의에 실패
잇단 협상 불발 디폴트 우려 심화
그리스 구제금융 프로그램의 종료 시한이 이달 말로 다가온 가운데 그리스와 국제 채권단의 협상이 심각한 난항에 빠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협상단을 아예 철수시켰고, 긍정적 입장이었던 유로존 채권단까지 그리스에 새로운 협상안을 제시하라고 통보한 상태다.
12일 그리스 카티메리니 등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관리들이 전날 밤 벨기에 브뤼셀에서 회의를 열고 그리스에 24시간 안에 새로운 협상안을 제시하라고 통보했다고 소식통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소식통들은 이날 회의에서 처음으로 그리스 시중은행의 예금인출 제한 등의 비상계획이 검토됐다고 전했다.
11일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이날 장 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만났으나 별다른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융커 위원장은 그리스의 새 재정 목표를 현재 구제금융 프로그램보다 낮춰 제시했으나, 치프라스 총리가 연금삭감 등의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해 협상은 결렬됐다.
도날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10일 치프라스 총리와 만나 “우리가 필요한 건 결정이지 협상이 아니다”라며 “그리스 정부는 좀 더 현실적일 필요가 있다”고 압박했다. 다른 EU 관계자들도 “개혁안을 수용하든지 파산하라”고 단호한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스 지원 최대 자금줄인 독일에서마저 강경론이 고개를 들자 분위기는 한층 비관적으로 변했다. 11일 독일 빌트는 독일은 어떠한 경우에도 그리스에 대한 제3차 구제금융 프로그램에는 반대할 것이라고 전했다. 국민들의 부담이 커지는 데 대해 정부의 경계심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EU, 유럽중앙은행(ECB)과 함께 그리스 국제 채권단 트로이카의 한 축인 IMF 협상단은 아예 브뤼셀을 떠났다. 게리 라이스 IMF 대변인은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합의 도달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며 협상단이 브뤼셀에서 철수했다고 밝혔다. 그는 "대부분의 주요 사안에 대해 우리와 큰 견해차가 있다”며 “차이를 좁히려던 최근의 시도에 진전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잇따른 협상 불발로 그리스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우려가 커지면서 협상단 사이에서 구제금융 프로그램 연장안이 검토되는 분위기다. 그리스 ANA-MPA 통신은 11일 그리스가 유럽안정화기구(ESM)의 자금을 이용해 ECB가 그리스 국채를 사는 조건에 동의하는 대신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내년 3월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그리스가 연장안에 합의해 내년에 부채를 상환하더라도 여전히 자본시장에서 직접 장기국채를 발행해 국가부채를 갚을 수는 없어 제3차 구제금융 또는 채무재조정 논란이 다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가 이 같은 연장안 마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전략을 바꾸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치프라스 총리의 최측근인 니코스 바우치스 그리스 내무장관이 최근 자국 내 시장과 지자체장들에게 현금 보유고를 즉시 중앙은행으로 이전하라고 지시한 것에 대해 FT는 구제금융 협상 합의가 이달 말까지 이뤄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채무 변제를 위한 자금 확보에 들어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리스가 제2차 구제금융의 마지막 분할금인 72억유로(약 9조267억원)를 받기 위해서는 늦어도 다음주 초까지 협상을 끝내야 한다. 그리스 의회와 유로존 19개국 의회에서 인준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양측은 오는 18일 유로그룹 (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 회의에서 다시 협의에 나선다.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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