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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업자, 당신이 그 집서 살아봐" 명판결, 미국을 바꾸다

입력
2015.06.1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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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아파트 임대업자의 횡포, 세입자들 집 수리 요구에 불응

진정 계속되자 市당국이 제소해… "임대주택서 보름 살아보라" 판결

주거 복지 '멀고도 험한 길'… 건물주 바뀌어도 우여곡절 거듭

뉴욕 브루클린의 이라 하커비 판사는 법 조항에 기계적으로 얽매이기보다 법익의 실현을 중시했다. 미국 언론은 그를 '상식의 판사'라고 불렀지만, 그의 판결이 대중의 감정에 언제나 투항한 것은 아니었다. 뉴욕타임즈 사진
뉴욕 브루클린의 이라 하커비 판사는 법 조항에 기계적으로 얽매이기보다 법익의 실현을 중시했다. 미국 언론은 그를 '상식의 판사'라고 불렀지만, 그의 판결이 대중의 감정에 언제나 투항한 것은 아니었다. 뉴욕타임즈 사진

의식주는 생존과 인간다운 삶의 3대 기본요건이다. 그 중에서도 늘 더 절박했던 건 의식(衣食), 즉 헐벗고 굶주리는 문제였다. 가수 쟈니 리가 ‘사노라면’의 원곡 ‘내일은 해가 뜬다’를 처음 부른 1966년에도 “비가 새는 판잣집도 즐거웁지 않더냐”고 노래했다.

주거 문제가 국가의 정책적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한국의 경우 60년대 경제개발 이후였다. 당시 정부는 산업화와 도시인구 증가에 따른 주택 공급 확대(양적 성장)라는 발등의 불을 꺼야 했다. 주거 빈곤이란 말이 보편화하고 주거권(질적인 주거 복지)이 실질적으로 정책에 반영된 것은 1980년대 이후, 특히 6공화국 출범 이후부터라고 해야 한다. 80년대 경제 호황과 정치적 민주화의 영향이 컸다. 철거민을 중심으로 성장한 도시빈민운동과 주택 문제의 정치적 이슈화도 그 시기의 일이었다. 주거빈곤이란 일정 수준 이하의(상대적) 주거환경, 혹은 주거 최저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절대적) 빈곤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1972년 제정된 주택건설촉진법이 주택법으로 개정된 것은 2003년이었다. 국가기록원은 “주택보급률 상승으로 그간의 주택공급 위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무주택자·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주거복지 정책, 주거수준 향상 및 재고주택의 효율적인 유지·관리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이 커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점차 증가되고 있는 주거복지 개선에 대한 요구와 지지를 수용하여 주거의 질과 참여 지향적인 주거복지정책을 펴 나가야 하는 필요성에 의해 ‘주택건설촉진법’을 ‘주택법’으로 개정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최저주거기준’이 마련된 것도 그 때부터였다.

미국 연방정부가 주택법을 제정한 것은 1937년이다. 저소득층 주거복지 정책은 크게 공공임대주택과 주택바우처, 저소득층 주택세금 면제제도 등이었다.

공급 측면의 대표적 주거복지정책인 공공임대주택은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된다. 재원 부족과 지역 주민 반발로 대규모 고층 건물로 지어져야 했던 공공임대주택은 범죄율 증가 등 각종 사회문제를 빚었고, 73년 이후 추가 건설이 중단됐다. 공공임대주택 입주자는 소득의 30%를 임대료로 내고, 관리비 및 임대료 차액은 연방정부가 부담한다. 2009년 공공임대주택 입주가구의 연평균 소득은 1만3,234달러(중위가구 소득 5만1,190달러)였다.

주택바우처제도는 공공임대주택 건설이 중단된 뒤인 74년부터 시행된 제도로 정부가 저소득 가구의 주거비 일부를 보조해 시장 내 민간주택에 거주하도록 한, 수요측면의 주거복지 제도다. 정부 입장에서 주택바우처는 주택 건설 및 관리에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공공임대와 달리 비용 면에서 효율적이다. 거주자도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거주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크게 호응했다. 저소득 가구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보다 임대료만 상승시켜 임대업자에게 좋은 일 시킨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 제도는 2009년 현재 미국의 가장 주된 주거복지제도로 자리잡았다.

지난 5월 17일 작고한 이라 하커비(Ira B. Harkavy)는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민사법원 판사시절 작은 판결 하나로 저소득층 주거 현실과 주택바우처제도의 문제점을 세상에 알리고, 악덕 임대사업자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1987년 12월 7일, 판사 하커비는 주택법 위반으로 뉴욕시 주택보전개발국(DHPD)이 소송을 건 당시 72세의 부동산 임대업자 모리스 그로스(Morris Gross)에게 전무후무한 판결을 내린다. 크라운 하이트 구 스털링스트리트 320번지 그의 임대용 빌딩 5층의 비어있는 아파트에서 15일간 살아보라는, 일종의 가택연금형이었다.

대대로 부동산 임대업을 해온 모리스는 뉴욕에 빌딩 두 채를 갖고 있었다. 스털링스트리트 건물은 원룸과 투룸 113세대가 입주할 수 있는 6층짜리 아파트였다. 그는 부동산과 함께 ‘건물에 돈 들이지 말라’는 선친의 유훈도 물려받았다고 한다. 쥐가 들끓고, 금 간 수도관에선 물이 새고, 천장 합판이 벌어져 시멘트 가루가 떨어지는 일은 예사였다. 욕실 벽에 구멍이 뚫려 종이나 커튼으로 가린 채 샤워를 하고, 갈라진 외벽을 테이프로 막고 겨울을 나야 했던 가구도 있었다. 하지만 그로스는 주민들의 수리 요구에 단 한 번도 응한 적 없었고, 자동 입금되는 연방 정부의 주택바우처와 가구당 280~750 달러의 월세는 꼬박꼬박 챙겼다.

입주자들의 진정은 끊임 없이 제기됐다. 하지만 뉴욕 DHPD가 현장 조사를 벌여 수도관 누수 등 무려 420건의 주택법 위반 사실을 적발, 그로스에게 소송을 건 것은 1986년 4월이었다. 그로스는 전면 수리ㆍ보수에 동의했고, DHPD는 소를 취하한다. 하지만 이듬해 1월 조사관의 확인 조사 결과 보수된 것은 돈 들이지 않고도 가능했던 33건에 불과했다. DHPD측 변호사 로렌스 카텔리는 “가장 문제인 건 배관설비인데 사실상 전면 재시공이 불가피한 실정”이라고 말했다.(NYT, 1988.2.13)

DHPD는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그로스는 건강상의 이유 등을 들어 답변서를 제출을 기피하고 수 차례 변론 기일을 연기하면서 곤경을 모면하려 했고, 그러면서도 건물 보수 노력은 일절 기울이지 않았다.

하커비의 판결은 그 끝에 나온 거였다. 그는 그로스에게 15일간의 가택연금과 반경 30m를 벗어날 경우 경보가 울리는 전자발찌 착용 외에 13만7,900달러의 벌금형(법원 모독죄 벌금 3만2,000달러는 별도)을 선고했다. 하커비는 거기 단서를 달았다. 13만7,900달러는 피고가 15일 연금형을 산 뒤 건물 수리ㆍ보수에 그 돈을 쓰겠다면 허용한다는 거였다.

그로스 소송 이전에도 유사한 진정과 소송은 허다했다. 하지만 임대업자들이 대부분 고령이어서 법원은 징역형 선고를 기피했고, 수리 비용에 못 미치는 벌금형 역시 별 실효가 없었다. 뉴욕 DHPD의 경우 임대사업자가 민사법원의 판결조차 무시하는 사례가 한해 평균 120~150건에 달하고, 그 중 절반 이상은 그로스와 똑같은 판결을 받을 만한 이들이라고, 판결 직후 카텔리는 말했다. 그는 “자기 빌딩이 어떤 지경인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건물주들이 지금도 수없이 많다. 우리는 지금 그 풍토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 중이며 하커비의 판결은 큰 힘이 될 것”이라며 반겼다.

하지만 대다수 임차인들은 하커비의 처벌이 너무 경미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35세의 한 임차인은 “내겐 1살짜리 딸이 있다. 그 애는 아파트가 너무 추워서 1년 내내 병을 달고 산다”고 말했고, 마이런 어비라는 25세 임차인은 “차라리 폐가에 사는 게 나을 것이다. 욕실 벽 구멍으로 쓰레기도 내다버릴 수 있는 이 집보다는 차라리 폐가가 낫다”고 말했다.

그로스의 형이 집행된 건 이듬해인 88년 2월 12일이었다. 하지만 하루 전인 11일 여러 명의 공사 인부가 그로스의 임시 거처가 된 5층 C룸에 몰려 들었다. 그들은 페인트 칠을 새로 하고 천장을 수리했다. 부엌 바닥도 새로 깔았고, 새 난방기도 설치했다. 세입자들의 분노는 폭발했다. “그도 똑같이 추워야 한다”는 거였다. 건물 외벽에는 “No Heat No hot water- No Rent(난방ㆍ온수 없으면 임대료도 없다)” “Welcome, you reptile(비열한)”같은 플래카드가 내걸렸고, 쥐가 잡혀 있는 쥐덫을 꽃다발 대신 들고 로비에 나온 임차인도 있었다. 그 집에서 7년을 거주했다는 한 임차인은 “다 수리한 집에서 고작 15일 구금이라니 웃기지도 않는 판결이다. 그는 ‘리커스 아일랜드(뉴욕 브롱크스의 교도소)’로 가야 한다. 아니라면 최악의 아파트에 집어넣어라.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그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로스는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채 보디가드들과 함께 아파트에 나타났다. 하지만 그에겐 ‘다 수리한 집’도 자신의 브라이튼비치 저택에 댈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구류는 8일 만에 끝났다. 그는 아파트에 머문 지 일주일 만에 법원의 승인을 얻어 아파트 전면 보수 공사를 시작했고, 법원은 그의 형 집행을 정지시켰다. 입주민들은 “정의를 원한다”며 법원을 성토했지만, 하커비는 “그로스는 주택법상의 주거기준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충분히 얻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로스는 풀려나면서 기자들에게 “집 수리는 끝내겠다. 부동산 임대업도 그만두겠다”고 밝혔다.(LA타임스, 1988.2.21)

뉴욕 브루클린 스털링스트리트(현 지명은 프로스펙트 리퍼츠 가든) 320번지 아파트 외관. 미국 주택정책의 어제와 오늘이 저 빌딩의 사연 속에 스며 있다.
뉴욕 브루클린 스털링스트리트(현 지명은 프로스펙트 리퍼츠 가든) 320번지 아파트 외관. 미국 주택정책의 어제와 오늘이 저 빌딩의 사연 속에 스며 있다.

이라 B. 하커비(Ira Baer Harkavy)는 1931년 4월 13일 브루클린에서 태어났고, 콜럼비아 로스쿨을 졸업했다. 81년 민사법원 판사가 됐고, 형사법원을 거쳐 주 대법원 판사로 재직하다 2007년 은퇴했다. 재판 지연을 세금 낭비라 여겨 재판 전 소장을 뜯어 읽는 것으로 유명했고, 일주일 넘겨 판결하는 예가 드물었다. 그는 “항소법원 연필에는 지우개가 달려 있다”고 말하곤 했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상식의 판사’라 불렀다.

91년 ‘The Super’라는 제목의 영화가 하커비 판결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영화는 실제와 사뭇 달랐다. 주인공은 조 페시(Joe Pesci)가 연기한 ‘그로스’였다. 악덕 임대인 ‘그로스’는 120일 가택연금형을 받고 아파트에서 지내다가 세입자 가정의 한 소년과 우정을 맺게 되고 어찌어찌 해서 개과천선하고, 세입자들과도 친해져 집을 멋지게 수리하고 더불어 잘 살아간다는 해피엔딩 휴먼코미디였다.

영화는 이후의 현실과도 달랐다. 스털링스트리트 320번지 아파트는 1992년 부동산세 체납으로 DHPD에 압류됐고, DHPD는 세입자 자치조합이 아파트를 운영하되 일정기간 후 협동조합을 만들어 적정가에 건물을 매입토록 했다. 조합이 관리를 맡으면서 외벽의 낙서가 사라졌고, 1층 로비에는 분수가 만들어졌고, 정문은 24시간 경비원이 상주했다. 주거 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거였다.

하지만 DHPD는 그 해 말 빌딩 관리권을 회수한다. 1년 임대수익보다 훨씬 많은 돈이 지출됐다는 게 이유였다. 당시 신문들은 조합이 가구당 매달 314달러의 관리ㆍ보수비용을 지출, 유사한 공공임대아파트의 가구당 지출비 149달러보다 2배가 많았다고 보도했다. 세입자이자 빌딩 무보수 매니저였던 스튜어트씨는 모든 비용은 건물 보수에 꼭 들여야 했던 지출이었다고 항변했다. “세입자들은 이 빌딩을 ‘베트남(무법천지)’이라 불렀다. 마약 거래상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경찰들이 매일 들락거려야 했다. 구멍 나고 물 새고 금 간 데가 여전히 천지였다.” 조합측은 관리권 반환소송을 제기하지만 패소했고, 뉴욕시는 빌딩 관리권을 비영리 주택기관인 커뮤니티개발공사(CDC)에 이관했다.

그로스의 88년 보수공사가 언 발에 오줌누기였는지 조합 운영에 비리가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상태가 별반 다르지 않았을 일반 공공임대아파트와 주민이 직접 관리한 스털링스트리트의 가구당 유지보수비 차이는 당시 뉴욕 주거빈곤층의 주거 여건이 어떠했는지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현재의 스털링스트리트 320번지는 번듯한 공공임대주택으로 운영되고 있다. 월 임대료는 원룸이 1,350달러, 쓰리룸은 1,725달러(2013년 7월 기준). 입주 신청을 하려면 1인 가구의 경우 연봉이 5만4,000달러 이상 9만300달러 이하여야 한다는 조건이 달려 있다. 2014년 미국 최저임금 생활자 연봉이 약 1만5,000달러였다. 브루클린 지역 부동산 정보지 ‘BROWNSTONER’의 저 임대 소식 아래에는 한 시민의 이런 댓글이 달려 있다. “연봉자격 제한 공공임대? 임대료가 일반주택보다 약간 싼 것은 맞다. 하지만 저 최저연봉 기준은 이 근방 평균 연봉보다 훨씬 많다. 아마도 뉴욕시가 이 빈민가를 고급스럽게 바꿔 줄 세입자를 찾는 모양이다.”

주거복지는 사회복지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긴 시간과 많은 예산이 들고, 민사적 이해관계가 밀접하게 얽혀 묘안을 찾기도 잡음 없이 추진하기도 힘든 분야로 통한다. 제한적 예산으로 양과 질을 절충하며 나아가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미국의 주거복지정책이 갈팡질팡 하는 것도 그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주택법상의 ‘최저주거기준’은 면적과 시설, 구조ㆍ기능ㆍ환경 등으로 정해진다. 한국의 현행 최저주거기준은, 면적 면에서 1인 가구 14㎡(4.235평)이다. 일본은 25㎡이고, 미국은 침실 면적만 11.15㎡다. 국토교통부의 ‘2014년 주거실태조사’결과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가구는 전체 가구의 5.3%인 98만 가구로 집계됐다. 1인 평균 거주면적은 33.5㎡였으나, 한국처럼 심한 양극화 사회에서 평균이란 사실 무시해도 좋은 숫자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한국주거복지정책(하성규 등저, 박영사)

주거복지의 새로운 패러다임(한국도시연구소, 사회평론)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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