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영' 촉발 후쿠다 전 고문 제언

“삼성은 이제 ‘신경영’을 잊어야 한다. 성공에 대한 기억을 리셋(reset, 깨끗이 지우고 다시 시작)하라.”
지금까지 삼성의 경영지침이었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신경영’선언을 촉발한 후쿠다 다미오(사진) 전 삼성전자 고문의 제언이다. 그는 신경영 22주년을 맞아 11일 그룹 사내 미디어인 ‘미디어삼성’과 가진 인터뷰에서 삼성을 위한 따끔한 충고를 내놓았다.
산업디자인 전문가인 후쿠다 전 고문은 1989년 이 회장의 요청을 받고 삼성전자의 제품 디자인 문제점을 세세하게 지적한 ‘후쿠다 보고서’로 삼성을 뒤집어 놓았다. 그러나 ‘소니는 1류인데 삼성전자 디자인은 2류’라는 내용의 이 보고서를 이 회장이 받아본 것은 1993년이었다. 그룹 내부의 관료주의 장벽에 막혔던 것이다.
뒤늦게 보고서를 받아든 이 회장은 격노했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경영회의를 통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말로 유명한 ‘신경영’을 선언했다. 후쿠다 전 고문은 “한 두 달 동안 서울가지 마라, 가면 돌 맞는다는 말이 돌 만큼 분위기가 심각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후 삼성은 폭발적 성장세에 접어들어 반도체, TV, 휴대폰 분야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섰다. 후쿠다 전 고문은 “10개 프로젝트 가운데 5개만 성공해도 대단한데 삼성은 10개 모두 성공시킬 만큼 기세가 엄청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후쿠다 고문은 이제 삼성이 신경영을 버리고 새 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후쿠다 전 고문은 “1993년의 삼성은 작은 기업이었지만 이제는 세계 시장을 이끌고 나가는 위치에 섰다”며 “무엇을 하면 좋을 지 지금 고민하지 않으면 10년 후 삼성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했다.
대신 후쿠다 전 고문은 물건을 팔기 위한 디자인을 하지 말고 감동을 주는 디자인을 하라고 강조했다. 그는 “판매하기 위한 디자인으로 소비자를 속이면 안된다”며 “소비자에게 좋은 경험과 감동을 주는 제품과 디자인을 하라”고 역설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이 회장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당시 디자인이라면 제품 형태와 색상에만 집착했는데 이 회장은 삼성의 철학을 디자인에 담으라고 해서 놀라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회장은 항상 미래만 얘기했다”며 “지금 만약 이 회장을 다시 만난다면 오히려 묻고 싶은 게 많다”고 덧붙였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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