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도 사립학교 다닐 수 있게
정부가 보조금 지급하면서
학생들 몰리고 학교간 격차 커져
공교육 성취도 급락으로 이어져
수준 높은 무상교육으로 전세계 교육 정책의 모범으로 꼽히던 스웨덴의 공교육이 위기에 처했다고 11일 가디언이 보도했다. 사립학교에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을 강화하고 기업에게 학교 운영을 허용하자, 학교간 격차가 커지면서 지난 몇 년간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급격히 떨어진 것. 지난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시스템의‘긴급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측정하는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PISA)에서 2000년 이후 스웨덴의 성적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급격히 떨어졌다. 가장 최근 평가인 2012년 스웨덴 15세 학생의 수학 성취도는 OECD 34개 국가 중 28위를 기록했고, 독해와 과학 분야는 27위를 기록했다. 이는 핀란드와 노르웨이 등 북유럽 이웃 국가들에 비해서도 심각하게 뒤처지는 성적이다. 또 교사들의 사기 저하와 자격 미달 교원에 대한 우려, 후진적인 일부 학교들의 교육 방식도 학업저하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구스타프 프리돌린 스웨덴 교육부장관은 가디언에 “떨어진 학업성취도뿐만 아니라 현재 시스템은 빈부 불평등을 강화시키고 있다”며 “공교육 후퇴로 크게 당황하고 있으며, 이는 섣부른 개혁이 초래한 정치의 실패”라고 말했다.
스웨덴 정부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진행된 교육 개혁에서 위기의 원인을 찾고 있다. 당시 중앙집권적이던 교육행정 권한이 대폭 지방자치단체들에 위임됐으며 이에 따라 교사 훈련방식과 시험ㆍ성적 산출 방식도 변화를 겪었다. 이중 가장 중요한 변화는 정부가 사립학교에도 공립학교와 동등한 예산 지원을 해줘, 중산층도 사립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바우처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이후 스웨덴 전역에는 거의 800개의 공적자금을 지원받는 사립 학교와 프리스쿨(어린이집과 유치원이 통합된 형태의 교육기관)이 생겨났고 이들 중 상당수는 이윤추구가 허용된 기업들에 의해 운영됐다. 이를 두고 좌파는 바우처 시스템이 학교가 교육보다 이윤 추구에 높은 관심을 두게 됐다며 비판하고 있다. 반면 학교 자유 선택을 지지하는 우파는 그 동안 학생을 제대로 통제 못하는 공립학교에서 교사의 권위가 약화된 공교육의 실패일 뿐 바우처제는 학력저하의 직접 원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프리돌린 장관은 “학력을 다시 향상시키기 위해 정부 예산을 공립학교의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프리스쿨과 사립학교는 정부의 입장에 반기를 들고 있다. 스웨덴에서 가장 큰 프리스쿨 중 하나인 국제영어학교(IES)는 미국 펀드가 소유하고 있는데 30여개 지점에 무려 2만여명의 학생이 다니며, 9만4,000여명의 어린이가 대기자 목록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입학이 어렵다. IES 창립자인 바바라 버그스톰은 “정부의 예산 지원 없이 현재 제공하는 교육서비스를 유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울라 해밀턴 스웨덴 사립학교협회장은 “공교육의 쇠퇴는 교육 개혁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며 프리스쿨의 도입이나 사립학교의 출현은 공교육 위기와 상관없다고 주장했다.
이 가운데 스웨덴 교육 환경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장기 불황으로 기업들은 새로운 학교를 여는 것을 더 주저하면서 새로 설립되는 학교 숫자가 감소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 사립학교 대기자 목록은 점점 길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안드레아스 슐라이셔 OECD 교육정책위원회 부국장은 가디언에 “스웨덴 정부는 학교에 대한 감독수단이 부족하기 때문에 교육에 성공적인 학교의 성공모델을 다른 학교로 확장시킬 수도 없고, 학업성취도에 미달하는 학교를 찾아내고 이를 해결할 수단도 없다”고 지적하며 “사립학교만으로 국가 전반의 학업성취도를 향상시킬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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