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선 수수료 받고 국내선 체납

대포폰 유심(USIMㆍ범용가입자식별모듈)칩을 넣은 특수기기로 국제전화를 불법 중계한 일당이 적발됐다. 첨단장비를 국제전화 중계에 악용한 범죄가 경찰 수사에서 드러난 것은 처음이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해외 통신업체와 계약을 맺고 유령법인 명의의 유심칩을 이용해 국제전화를 불법 중계,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컴퓨터 등 이용사기)로 엄모(56)씨를 구속하고 최모(63)씨 등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엄씨 등은 2013년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중국에서 들여온 유심박스(DMT)로 국제전화 신호를 국내전화 신호로 전환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며 해외 통신업체로부터는 중계 수수료를 챙기고, 국내 통신사에는 발신 요금을 체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엄씨 등은 온라인에서 유심박스를 대당 150만~200만원을 주고 총 18대를 구입했다. 이들이 구입한 유심박스는 유심칩을 여러 개 꽂도록 제작된 특수 장비로, 다중 회선의 전화를 사용할 수 있게 설계된 것이다.
이들은 국제전화 통신을 사고 파는 ‘홀세일’이라는 중계사이트에 접속, 평균 거래가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미국, 홍콩의 통신업체 5곳과 한국으로 수신되는 국제전화 중계를 계약했다. 국제전화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통신당국의 허가가 필요하지만 이들은 받지 않았다.
현행 국제전화 중계 방식에서는 엄씨 등이 해외 업체로부터 송출 받은 국제전화를 KT 등 국내 통신 3사에 재송출하면 국내 통신사가 이를 최종 수신자에게 전송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엄씨 등은 통신 3사에 발신 요금 수수료를 내야 하지만, 망해가는 국내 법인 5곳 명의로 대포폰을 개설, 취득한 유심칩을 유심박스에 꽂아 범행에 사용하는 방식으로 요금을 체납했다. 이렇게 통신 3사에서 개통한 유심칩은 617개였으며 체납금은 유심칩 1개당 평균 140만원, 총 9억여원에 달했다. 반면 이들이 외국 통신업체로부터 받은 국제전화 중계 수수료는 확인된 것만 8,700만원이다.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 홍콩에 설립한 유령회사 명의 계좌로 돈을 송금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국가정보원에서 국제전화가 대포폰을 통해 대량 수신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수사에 착수하게 됐다”며 “보이스피싱 등 각종 범죄에 악용될 우려가 있어 관련 수사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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