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차ㆍ에스컬레이터 등 이용 때 손잡이 기피 현상 갈수록 확산
"감염의 근거 없고 부상 위험만 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때문에 사람들이 만진 손잡이가 찝찝해요.”
11일 오후 2시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번 출구로 나온 중국인 유학생 왕모(20ㆍ여)씨는 탑승 내내 일부러 손잡이를 잡지 않았다. 중간에 계단 왼쪽으로 걸어 올라가는 시민들과 몸이 부딪칠 뻔 해 서둘러 균형을 잡아야 했는데도 손잡이는 굳이 피했다. 이유는 불특정 다수가 접촉하는 에스컬레이터 손잡이에 메르스 바이러스가 있진 않을까 걱정돼서다. 왕씨는 “불편해도 메르스가 잠잠해질 때까지는 매사 조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하철 내부도 상황은 비슷했다. 1호선 동대문~서울역 구간 하행선의 한 전동차에서는 승객 40여명 중 6~7명만이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정차역이 근접해 열차가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두 발로만 균형을 잡는 사람들이 상당수였다. 승객 김모(45ㆍ여)씨는 “메르스 사태 이후 손잡이를 가급적 피하고 있다. 넘어지려 할 때만 잡는 편”이라고 말했다.
메르스 공포 탓에 시민들이 대중교통이나 에스컬레이터 손잡이를 기피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손잡이 기피는 일부 메르스 확진 환자가 격리 전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부쩍 늘었다. 앞서 서울 금천구는 60대 중국동포 여성이 격리 전까지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한 사실을 9일 공개했고, 부산시도 전날 60대 감염자가 KTX와 지하철을 이용했다고 발표했다. 또 메르스가 최초 발병한 평택성모병원의 벽 손잡이, 문고리 등에서 메르스 바이러스의 조각인 RNA(리보핵산)가 발견됐다는 역학조사 결과도 영향을 미쳤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이런 우려를 감안해 대중교통 방역에 공을 들이고 있다. 서울메트로는 9일부터 주 1회 실시하던 전동차와 역사 소독을 매일 실시하고 있다. 전동차 내 손잡이, 난간뿐만 아니라 에스컬레이터 손잡이, 승강기 버튼 등 손이 닿는 모든 시설이 대상이다.
아직까지 대중교통을 통한 감염사례는 발견되지 않았다.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김남중 교수는 “메르스 감염이 손잡이를 통해 이뤄진다는 의심은 현재까지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손잡이를 잡지 않아 생기는 안전 위험이 메르스 감염 가능성보다 훨씬 크다”며 “특히 에스컬레이터 사고의 대부분은 손잡이 사용 부주의에 따라 발생하고 큰 부상이 뒤따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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