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를 바꾼 워털루 전투(1815년 6월18일) 200주년을 앞두고, 당시보다 치열한 마케팅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나폴레옹 1세의 프랑스군(12만5,000명)이 웰링턴 공작의 영국군(9만5,000명), 블뤼허의 프로이센군(12만명) 연합군과 ‘건곤일척’ 대결을 치른 진짜 장소를 둘러싸고 벨기 소도시 브렝-라뤼드(Braine-l’Alleud)가 워털루와 세계 주요 관광안내서 출판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11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브렝-라뤼드 시의회는 이미 온 지구촌에 ‘워털루 전투’로 알려진 당시 군사적 충돌이 실제로는 워털루 남쪽으로 3, 4㎞ 떨어진 브렝-라뤼드에서 치러졌다는 사실을 세계 언론에 알리는 한편, 해당 사실을 기재하지 않은 관광안내서를 발간한 미쉐린 출판사에 내용 정정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벨기에 역사학자 에릭 뮈비센은 WSJ에 “5건의 주요 전투 중 3건이 브렝-라뤼드에서 치러졌고 나머지도 워털루가 아닌 플랑세노와(Plancenoit)에서 벌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워털루에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는데, 모든 영광을 차지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전투가 서양에서는 일패도지(一敗塗地)의 대명사가 된 ‘워털루 전투’라는 이름을 갖게 된 건 승자인 웰링턴 공작의 지휘 본부가 전장 외곽 워털루에 있었기 때문이다. 웰링턴 공작이 승리 소식이 담긴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머물고 있던 ‘워털루’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다.
힘겨운 ‘이름 되찾기’ 싸움을 선언한 브렝-라뤼드의 뱅샹 스쿠르노 시장은 “대세가 된 ‘워털루’라는 이름을 완전히 허물기는 어렵겠지만, 역사 속에서 우리 도시의 진정한 의미가 확인된다면 연간 약 40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프랑스와 벨기에도 워털루 기념 주화 발행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패전국 프랑스의 반대로, 무산 직전까지 몰렸던 벨기에가 유럽연합의 주화발행 규정을 교묘히 이용해 ‘워털루 전투 200주년 기념 주화’를 발행키로 한 것이다.
외신에 따르면 벨기에는 당초 법정 통화인 2유로 주화로 발행하려 했으나, ‘19개 유로권 국가는 동전을 자체 발행할 수 있지만 19개국에서 모두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규정을 이유로 프랑스가 제동을 걸었다. 벨기에 정부는 잠시 주춤했으나, 액면이 2.5유로인 비법정 화폐는 벨기에 내부에서 다른 유로 회원국 간섭 없이 발행할 수 있다는 규정을 찾아내 프랑스에 반격을 가한 것이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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