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조 한 쌍을 키운 적 있다. 전체 몸통은 회색인데 군데군데 검은색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보기에 산뜻한 색감이었다. 목소리도 낭랑하고, 무엇보다 가끔씩 불어대는 휘파람 소리가 일품이었다. 혼자 있을 때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면 왠지 정신이 환기되는 기분이었다. 소리 한 두 번에 마음의 차원이 전환되어 짐짓 넋 놓고 있던 일들에 대한 새삼스런 자각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다가 눈길을 주면 저들끼리 파닥거리거나 둥지에 몸을 웅크리며 딴청. 문득, 가련하기도 했다. 창가에 두기는 했지만 볕이 잘 안 들어 우울해질까 걱정될 때도 있었다. 가능하다면 하늘이라도 몇 점 떼어 새장 위에 걸어두고도 싶었다. 목을 주억거리며 뭔가 생각하는 얼굴이 될 때면 그 작은 머릿속에 들어있을지 모를 모종의 그림 따위를 혼자 상상하기도 했다. 그래봤자 바라보는 이편 인간의 두뇌 속 허상일 테지만, 그거라도 공유하며 뭔가 대화라도 나누고 싶었다.
그러다가 새가 떠났다. 같이 살던 후배가 분가하며 데리고 간 것인데, 지금도 새장 놓여있던 자리의 깃털과 모이찌끼들을 안 치우고 있다. 울음소리의 여운이 여직 안 지워지기 때문이다. 누군가 떠나버린 자리가 있을 때보다 더 분명하다니. 미련은 아니라고 본다. 그저 그것들이 바라봤을 내 모습이 거기에 더 짙게 배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새들은 과연 내게서 뭘 보고 뭘 들었을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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