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이야기라고?” 누군가 반문했다. 영화 ‘무뢰한’의 줄거리를 간단히 말했을 때였다. 제목만 봐서는 화려한 액션이 상영시간 내내 스크린을 장식하는 남자 영화인 줄 알았다는 것이었다.
영화 ‘무뢰한’은 사랑이나 액션으로 단순 형용할 영화는 아니다. 사랑이 있고, 그 사랑을 표현하는 도구로 액션이 동원된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단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이 여러 갈래로 뻗다가 하나의 사랑으로 수렴된다. 남루한 풍경이 인물의 심리를 전하고 배우의 뒷모습만으로도 진한 감정이 전해진다. 자신이 쫓던 살인범의 여자를 사랑하게 된 형사의 알 수 없는 감정과, 의문투성이 사나이의 접근을 경계하면서도 설렘을 감추지 못하는 여자의 모순적인 정서가 엉키며 음산하면서도 따스한 기운을 품는다. 수작이란 칭호를 얻는 좋은 영화들이 무릇 그렇듯 다양한 결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전도연의 호연도 이 영화의 주요 미덕이다. 자존심만 남은 퇴락한 술집 여자 혜경은 전도연의 몸을 빌려 생명력을 얻는다.
‘무뢰한’은 어렵사리 만들어진 영화다. 2000년 데뷔작 ‘킬리만자로’이후 메가폰을 놓아야 했던 오승욱 감독의 개인사만으로도 제작 과정의 고통을 가늠할 수 있다. 남녀 주인공으로 이정재와 전도연이 확정된 뒤 투자를 받을 때만 해도 순탄해 보였다. 건강 문제로 이정재가 하차한 뒤 새로운 남자 배우를 물색해야 하는 곤경에 처했다. 전도연이 직접 남자배우 리스트를 뽑아 대안 찾기에 나설 정도로 위기감은 컸다. “완성만이라도, 개봉만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오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내내 기원했다고 한다.
이정재 대신 김남길이 물망에 올랐다. 오 감독 마음에는 그리 들지 않는 배우였다. 김남길이 오 감독의 경기 김포시 자택까지 직접 차를 몰고 찾아왔다. 둘은 아파트 한 켠 평상에 앉아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눴고 김남길의 캐스팅은 확정됐다. 만약이란 말은 부질없지만 김남길이 형사 재곤을 연기하지 않았다면 영화의 무게감은 덜했을 것이다.
‘무뢰한’이 흥행전선에서 고전하고 있다. 9일까지 38만5,785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이 봤다. 볼만한 영화가 없다며 한국영화를 외면하는 시기에, 우여곡절 끝에 나온 수작의 흥행 부진이라니 아이러니다. 사연 없는 영화는 없겠으나 ‘무뢰한’은 흥행에 대한 열망을 품을 법한 영화다. ‘무뢰한’의 흥행 뒷심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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