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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섬 건강 지킴이… 말동무 해드리는 것도 도움 돼요"

입력
2015.06.1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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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70여명 하태도 보건진료소장

"진료ㆍ투약ㆍ독거노인 관리 1인多역,

의료장비ㆍ의약품ㆍ의술 부족 아쉬워"

하태도 보건진료소장 손혜경씨에게 섬은 삶 그 자체다. 그는 "주민 대부분이 60대 이상 고령자인 섬에선 어르신들의 말동무가 돼 주는 것만으로도 이들의 건강관리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하태도=안경호기자
하태도 보건진료소장 손혜경씨에게 섬은 삶 그 자체다. 그는 "주민 대부분이 60대 이상 고령자인 섬에선 어르신들의 말동무가 돼 주는 것만으로도 이들의 건강관리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하태도=안경호기자

“엄마, 안 돼요! 또 나 애먹이지 마세요.”

외딴섬의 보건진료소장은 단호했다. 얼굴엔 미소가 흘렀지만 말끝은 다부졌다. 그에게 “내일 물질을 하러 간다”며 링거(수액 주사)를 놓아 달라고 떼를 쓰던 70대 해녀 할머니의 시선은 어느새 딴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며칠 전 물질을 하다 힘이 빠져 ‘큰일’을 치를 뻔했던 터였다. “에잇, (진료)소장! 사탕이나 있으면 하나 가져와. 입안이 파삭파삭해.” 잠시 후 링거 대신 전기자극근육치료를 받아야 했던 할머니의 입에서 투정 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 가진 않았다. “사탕 대신 튀밥이오”라고 웃으며 튀밥을 입에 넣어 주던 보건진료소장의 애교에 할머니는 웃음으로 화답했다.

전남 목포에서 쾌속선으로 3시간 거리에 있는 신안군 흑산면 하태도의 태도보건진료소는 제주를 제외하곤 한국일보가 가장 멀리 배달되는 곳이다. 한국일보의 최장거리(본사기준 449.9㎞) 독자이기도 한 태도보건진료소장 손혜경(52)씨는 섬지기이자, 70여명에 달하는 섬주민들의 건강 파수꾼이다. 지난 8일 오전 뭍에서 찾아온 손님에게 첫 인사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문에 섬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는데…”라고 말할 정도였다.

올해로 공직생활 28년째인 그는 보건지소 근무경력 2년을 뺀 26년을 섬에 눌러 앉아 살았다. “육지부인 갱상도(경북 경주) 아가씨가 전라도 섬으로 시집 와가꼬 섬사람이 돼브렀어라. 그냥 좋았고 (뭍으로)나가기 싫었소”라고 너스레를 떠는 그의 입담은 영락없이 전라도 섬사람이었다.

그러나 뭍(세상)과 격리된 손씨의 생활은 늘 긴장의 연속이다. “섬에서 혼자서 근무하다 보니까 항상 응급환자 발생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합니다. 하루 24시간 스탠바이 상태를 유지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인터뷰하던 날도 그는 퇴근 무렵 인근 상태도에서 극심한 복통을 호소한 응급환자의 이송 업무를 보느라 3시간 넘게 전화통을 붙들고 있었다. 환자를 호송할 해경 경비정과 헬기를 찾지 못해 애들 태우던 그의 입에선 연방 “아~ 돌겠다”는 말이 새어 나왔다. 섬마을 사랑방 역할을 하는 진료소를 찾은 주민들은 “우리 소장님, 또 바쁘다”며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손씨는 “생(生)과 사(死)가 왔다갔다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했다.

손씨는 “섬은 나의 집”이라고 말하지만 이 때문에 남모를 고통도 감내해야 했다. 무엇보다 20년 넘게 환자진료와 투약, 독거노인 관리, 보건교육, 건강검진, 감염병 관리 등 모든 진료소 업무를 혼자 도맡았던 그에게 2년 전 뭍(보건지소)에서의 조직생활은 낯설었다.

“섬에서처럼 어르신들에게 ‘엄마’ ‘아버님’하고 부르며 말동무도, 상담도 해주고 살갑게 대했는데 언제부턴가 동료들이 눈치를 주더라구요. 다들 바쁜데 일은 안 하고 혼자 왜 저러고 있냐 싶었겠죠. 어떤 윗분은 제 인사도 안 받더라구요.” 짙은 쌍꺼풀이 도드라진 그의 두 눈에선 금세 눈물이 쏟아졌다.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자신의 투병 사실도 숨기며,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남편의 건강도 챙기지 못한 채 환자를 돌본 대가 치고는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서글픔으로 이어진 탓이었다. 결국 자기 자리를 잡지 못하고 주위만 빙빙 돌며 소외감을 느꼈던 그는 지난 2월 섬으로 돌아왔다. 손씨의 그때 기억은, 그의 표현대로라면 “뭍에서 추방당한 감정”으로 아직도 가슴에 응어리져 있다.

다시 돌아온 섬은 고향처럼 푸근했다. 그를 따뜻하게 맞아 준 섬주민들이 그에겐 치료약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굴엔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제가 의료인이지만 의사가 아니어서 제대로 된 치료를 해주지 못하고, 처방도 진료소에 있는 약으로만 해야 한다는 게 마음이 아파요. 그럴 땐 내가 돌팔이 의사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어르신들 손 한 번 더 잡아주고 그분들 살아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죠.”

이튿날 오후 섬을 떠나기 전 다시 들른 보건진료소는 여느 때처럼 손씨의 활기찬 목소리가 넘쳤다. “아이고, 엄마. 오늘은 왜 안 오시나 했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제?”

하태도=안경호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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