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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생존은 셀프

입력
2015.06.10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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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말에 가벼운 몸살을 앓았다. 누군가 “메르헨 아니예요?”라고 물어봤고 나는 “내가 이렇게나 낭만적인 질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여러분!”하고 장난을 쳤다. 가벼운 농담거리일 수 있었던 외국의 낯선 전염병은 불과 2주도 지나지 않아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되는 그 병’으로 창궐했다. 사극에서나 보던 돌림병 수준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메르스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고, 환자가 발생한 지역은 늘어만 간다.

처음에는 정부의 발표를 믿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다. 예방책이랍시고 내놓은 것이 (국내에 수입조차 되지 않는)낙타고기를 피하라는 수칙이었을 때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마스크를 샀다. 2015년의 대한민국이 말하지 않는가. “국민 여러분, 생존은 셀프입니다~.” 아아. 다 빼앗아간 개인정보를 스스로 지키라고 강짜를 부릴 때 이 사태를 예견해야 했나 보다.

“‘메르스’라는 공포스러운 말이 공포감을 조장하고 나라 경제를 힘들게 하니, 우리말로 바꾸면 안되겠냐”는 발언은 (무려)국회의원으로부터 나왔다. 평생의 쭈쭈바 꼭지를 걸고 말하는데, 지금 제일 공포감을 조장하는 것은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을 책임자가 한다는 사실이다. 핵심은 ‘어떤’ 전염병인가가 아니다. ‘왜’ 이 상황까지 왔으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이다. 바이러스 변형도 아닌데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빠른 감염 속도와 많은 감염자가 발생했다. 이것은 엄연히 시스템과 매뉴얼의 문제이며, 실시간으로 국가의 무능력과 무책임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이다. 호미로 막을 수 있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니 우리말 대회에서 일등 먹은 이름의 병이 와도 안 될 일이다.

푸코는 근대의 권력은 사람들을 살게 만들고(faire vivre), 죽게 내버려두는(Laisser mourir)데 있다고 보았다. 근대 이전의 전통적 권력은 생사여탈권, 즉 사람들을 죽게 만들고 살게 내버려두는 것으로 존재했다.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곧 언제든지 무력을 사용하여 생명이나 물건, 시간을 탈취할 수 있다는 뜻이다. 죽이는 권력을 상징화함으로써 주권자는 자신의 권력을 가시화하고, 신민들은 불안한 상태에서 이에 복종한다.

그러나 이제 권력은 죽음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관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인구의 수가 국력의 척도가 되고 개인의 생산이 곧 국부로 직결되기 때문에, 통치자에게는 육체를 경영하고 생명을 관리하여 인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이것이 생명권력, 혹은 생체권력이며 이를 바탕으로 행해지는 통치가 생명관리 정치 또는 생체 정치이다. 권력의 주된 역할은 생명을 보장하는 것이다. 우리의 살아있음을 관리하는 권력, 이를테면 건강, 위생, 출생률, 보험, 교육, 복지, 인구통계학 등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푸코는 생명관리권력이 규율로 작동하여 개인을 억압하고 자본주의와 연합하는 구조를 비판한다. 기껏 이러한 생명정치 안에서 권력과 싸우며 살아가는 줄 알았더니 착각이었다. 현재의 정부는 생명을 관리하지도 안전을 확보하지도 못했다는 점에서 권력의 기능이나 역할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이다. 사람들이 메르스에 속수무책인 상황을 “무정부 상태”라고 탄식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권력이 나의 생명을 관리할 생각도 능력도 없는데, 푸 선생님, 이 경우엔 도대체 어떻게 해야?

게다가 전염병을 관리하기보다 유언비어를 퍼뜨린 이들을 잡아들이는 데 더 심혈을 기울인다. 그야말로 근대 이전의, 즉 ‘죽이는 권력’의 재림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꾸역꾸역 역행하는 시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 끈질기게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자. 죽이거나 죽게 내버려두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권력에 대항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뿐이니.

환자들의 쾌유와, 더 이상의 확산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진송 ‘계간홀로’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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