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제휴·출자 지원 창구 역할, 사업성 검토 후 계열사 연결 주선
전기차 충전 요금 즉시 결제 등 4개 업체와 첫 사업 제휴 예정
"신청 들어오면 반드시 면담" 핀테크 생태계 조성에 앞장
지난 3일 서울 중구 KB금융그룹 사옥 내 KB핀테크허브센터(허브센터)를 찾았을 때 권혁순 센터장을 포함한 직원들은 온라인 P2P(개인간) 대출 사업을 하는 장보영 하나스 대표와 한참 면담 중이었다. 대출 희망자가 기존 고금리 신용대출 대신 담보물을 맡기고 보다 낮은 금리로 모금하는 ‘온라인 전당포’ 형태의 P2P 대출 플랫폼을 운영 중인 그는 KB그룹의 금융망과 연계한 사업 제휴를 희망했다. 1시간가량 장 대표의 사업 제안을 청취한 센터는 사업타당성 검토 등을 거쳐 그룹 내 계열사와의 면담을 주선할 계획이다.
올해 3월26일 문을 연 허브센터는 요즘 금융권 최대 화두로 통하는 핀테크(fintechㆍIT기술과 접목한 금융서비스)의 전초기지다. 3월 이래 은행권을 중심으로 잇따라 설립되고 있는 핀테크 지원센터가 기존 IT사업 부서를 확대 개편한 것이라면, 센터는 지주사에 설립돼 핀테크업체와 11개 계열사 사업부를 연결해주는 허브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지급결제 분야 제휴 요청 많아
허브센터에는 국민은행 출신인 권 센터장을 포함해 4개 계열사 IT전문가 6명이 근무하며, 금융기관과의 제휴사업이나 출자ㆍ대출을 희망하는 핀테크업체의 지원 창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권 센터장은 2001년 이메일뱅킹(이메일을 매개로 한 송금서비스)을 도입하고 이태 뒤엔 세계 최초의 칩 기반 모바일뱅킹 서비스를 개발해 흥행시켰던 ‘원조’ 핀테크 전문가다.
지금까지 허브센터 문을 두드린 업체는 지난달까지 56곳이고 이달 들어 60곳을 넘어섰다. ‘신청이 들어오면 반드시 면담한다’는 것이 허브센터 원칙인 터라, 출범 이래 매일 한 건 이상의 업체 미팅이 진행된 셈이다. 신생업체가 많지만 설립한 지 10년 이상 됐거나 주식이 상장된 회사도 있다. 핀테크업계에서 잘 알려진 회사로부터 “획기적 제안을 할 테니 임원들을 한자리에 모아달라”는 호기로운 요청이 들어오기도 한다.
허브센터에 따르면 5월말 현재 지원 신청을 기술분야별로 나눠보면 지급결제 및 송금이 19건으로 가장 많고, 인증(본인 확인) 10건, P2P 대출 7건 등이다. “지적재산권 거래소를 만드는 데 투자해달라”는, 핀테크인지 아닌지 알쏭달쏭한 요청도 들어온단다.
출자보다는 제휴(공동사업) 제안이 압도적이다. 현장 표현을 빌리자면, 자신들이 개발한 시스템을 KB 금융망에 ‘붙여달라’는 요청이 많다. 당국이 적극적인 유권해석을 통해 은행의 핀테크회사 출자 제한을 풀었지만 막상 현장에선 지분투자 논의는 미진하다. 지분을 넘겨야 하는 업체나 투자위험을 감내해야 하는 금융기관 모두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허브센터 역시 5월말 현재 신청업체 56곳 중 52곳이 제휴를 요청한 반면 지분투자를 요청한 곳은 4곳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이다.
전기차 충전기에도 핀테크
허브센터는 출범 석 달을 맞는 이달 하순쯤 첫 제휴 계약을 맺을 계획이다. 상황은 유동적이지만 모바일인증 1곳, 간편결제 1곳, P2P대출 2곳 등 4개 업체가 제휴 성사 단계에 있다. 모바일인증 업체는 신용카드에 장착된 교통카드를 핸드폰에 대는 것으로 카드 결제를 위한 본인 확인을 할 수 있는 기술을 제안했다. 안병욱 허브센터 팀장은 “신용카드에 교통카드가 탑재된 비율이 경쟁사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KB국민카드의 특징을 잘 파고든 사례”라고 말했다. P2P대출 업체는 KB금융 산하 제2금융권(저축은행ㆍ캐피탈)과의 제휴를 희망한다. 독자적으로 P2P대출 사업을 하기엔 법적 규제가 적지 않은 만큼, 고객 모집능력 등의 강점을 기존 금융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발휘하겠다는 계산이다.
간편결제 부문 제휴 후보회사는 특이하게 전기자동차 충전기술을 가진 제조업체다. 특허를 갖고 콘센트에 꼽는 휴대용 차량충전기를 개발 중인 회사인데, 충전 현장에서 전기요금을 곧바로 치를 수 있는 카드결제 시스템을 충전기에 장착해달라는 사업 제안을 내놓았다. 전기요금을 둘러싼 시비가 해소되는 만큼 전기차 운전자는 어디서든 양해를 구하고 차량 충전을 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허브센터의 분주하고 활기찬 분위기에서 감지되듯, “핀테크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적 의지와 금융기관의 호응이 맞물리면서 핀테크 산업은 순조롭게 출항하는 모양새다. 한 핀테크업체 대표는 “올 들어 핀테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는데, 사업을 시작한 지난해와는 너무 다른 분위기”라고 전했다.
하지만 금융회사 입장에선 시장 판도를 바꿀 잠재력을 지닌 ‘경쟁자’를 제 손으로 기르는 딜레마적 상황과 맞닥뜨린 것도 사실이다. 자신들의 수익원인 금융 인프라를 제휴 업체에 노출시켜야 하는 점이나, 그 과정에서 고객정보 유출 등의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한 은행권 핀테크 지원센터 관계자는 “사업성만 놓고 본다면 우리가 먼저 나서 핀테크 사업을 벌일 만한 유인이 없을지도 모른다”며 “금융권의 핀테크 지원은 신생업체들이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라는 정책방향에 부응하는 공익사업의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ankookilbo.com
김정화 인턴기자(이화여대 중어중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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