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기술자’ 이근안(77)씨의 고문에 못이겨 간첩임을 인정하고 억울한 옥살이를 한 어부 부부가 37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 1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국가보안법 위반과 간첩 혐의 등으로 기소돼 징역형을 받은 안모(사망)씨와 부인 최모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9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들이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고문 등을 당해 자백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이같이 판시했다.
안씨는 1962년 8월 서해 근해에서 새우잡이 조업을 하다 납북되는 등 1965년 10월까지 3회에 걸쳐 99일 간 납북됐다 돌아왔다. 경찰은 12년 후인 1977년 안씨를 영장 없이 체포해 간첩 혐의로 조사했다. 그에게는 납북 당시 간첩교육을 받고 국내로 돌아와 북한 공작원과 접선해 국가 기밀을 빼돌렸다는 혐의가 적용됐다. 그러나 안씨 혐의는 이근안씨 등 경기도 경찰국 수사관들의 고문에 못 이겨 허위로 자백한 것이었다. 부인 최씨 역시 불법 연행돼 고문과 가혹행위를 이기지 못하고 남편의 혐의를 허위로 인정했다. 이후 이들 부부는 재판에 넘겨져 안씨는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 최씨는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을 선고 받았다. 이후 2012년 최씨와 자녀들은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 결과를 근거로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안씨는 1992년 사망했다.
재심을 받아들인 서울고법은 2014년 “이들의 자백은 가혹행위 아래서 이뤄진 것이므로 증거능력을 부여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불법구금 상태에서 충격과 공포감에 휩싸였을 안씨 부부의 진술 내용을 믿기 어렵다”며 “이근안씨의 ‘부부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강요가 없었다’는 법정 진술도 고문 등 가혹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정황과 맞지 않아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김관진기자 spiri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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