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메트로 9호선 로베스피에르역. 흑인이 압도적으로 많다. 과일 가게와 카페, 수퍼마켓 따위가 좁은 일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즐비하다. 사람들은 한적해 보이고 무슬림 복장을 한 사람들도 종종 보인다. 무례를 무릅쓰고 카메라를 댔더니 짐짓 진지하게 포즈까지 잡아준다. 그도 웃고 나도 웃는다. 마레 지구 등지에서 마주친 거만한 백인들보다 한결 훈훈하고 인간적이다. 좁은 인도에서 맞부딪친 흑인 청년은 약간 겁먹은 표정으로 갈 길을 먼저 열어준다. 볕이 눈부셔 인상 썼을 뿐인데, 괜히 내가 미안해진다. 알고 보니 이곳은 말리 이주민들이 주로 집결한, 가난하고 서러운 자들의 동네. 그 약간은 비애스럽고 쓰라린 듯한 기운이 마음을 움직여서일까. 공연히 상점에 들어가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생수와 담배를 몇 갑 산다. 그리고 저녁엔 낭독회. 마침 파리에 거주하는 아는 뮤지션이 있어 노래와 연주도 곁들인다. 장소는 기요틴(La Guillotine)이라는 일종의 대안문화공간. 거의 폐건물 수준의 공간을 멋들어진 아트스페이스로 꾸몄다. 기타를 잡고 노래 부른다. 서울에서완 다르게 몸이 크게 열리고 소리가 풍성하다. 내가 나를 놓아버려 공간 속에 소리 자체가 되어 스민다. 모르는 사람들의 눈빛이 소리의 근원인 양 반짝인다. 소울(soul)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가난과 핍박과 그로 인한 슬픔과 흥. 햇빛이 금빛이다.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