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바그너 발퀴레 정명훈 대신 지휘
오늘 서울시향과 다시 한번 호흡

지난 달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서울시향의 상반기 최대 이벤트인 바그너의 ‘발퀴레’ 연주가 끝나자 객석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이 목 디스크를 이유로 일주일 전 지휘를 취소했지만 정작 공연을 본 관객들은 “봉 잡았다”며 흥분했다. 청중들은 지난해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 1부인 ‘라인의 황금’보다 더 성숙한 2부 연주였다며 기립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4시간 반에 걸친 서울시향의 ‘반지 원정’을 이끈 주인공은 독일 출신의 콘스탄틴 트링크스(40). 새 스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마에스트로 정을 대신해 발퀴레를 지휘해줄 수 있냐고 제안받았을 때, 기회다 싶었죠(웃음). 3년 전 발퀴레를 오페라 버전으로 지휘한 적 있는데, 이번에는 콘서트 버전이라 악기 편성도 대규모로 바꾼다더군요. 흥분했죠.”
8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만난 트링크스는 쑥스럽게 웃었다. 그는 10일 예술의전당에서 다시 한번 서울시향을 이끌며 바그너와 그 대척점에서 선 작곡가 슈만의 작품을 선보인다. 연주회 서막을 여는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전주곡’이 밝고 긍정적인 축제분위기를 갖는 반면 대미를 장식하는 슈만의 ‘교향곡 2번’은 낭만주의 음악 특유의 깊고 우아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띤다.
“처음 바그너 음악을 접한 건 11살 때였어요. 오페라 ‘로엔그린’을 보고 숨이 멎는 줄 알았죠. 신화적인 분위기가 감돌면서 감정 폭이 큰, 바그너 특유의 색깔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죠. 고등학생 때 친구들이 댄스클럽 다녀도 저는 집에서 바그너 음악 들을 정도였으니까 열병을 심하게 앓은 셈이죠.”
‘바그너 스페셜리스트’로 알려진 트링크스는 독일 자를란트 주립극장, 다름슈타트 국립극장 음악감독을 거쳐 뮌헨 방송교향악단, 슈투트가르트 필하모닉 등 유럽 주요 극장과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한국에서의 연주는 지난 발퀴레 공연이 처음이다. “바그너 작품은 선율 안에 캐릭터와 스토리가 다 담겨있어서 흐름을 따라가는 게 중요해요. 짧은 시간 이 감정폭을 다 드러낼 수 있을까 우려도 했지만, 단원들 적응력이 매우 뛰어나더군요.”
연주 프로그램을 직접 지정한 그는 “바그너가 스스로 말 많은 작곡가라면, 슈만은 연주자들이 말을 많이 하게 만드는 작곡가”라고 소개했다. “바그너 작품은 워낙 복잡해서 연주자들 사이에 곡 해석에 관한 공감대를 갖고 있고, 그 색깔을 충실히 드러내면 되거든요. 슈만 작품은 전기 낭만주의로 해석할지, 후기 낭만주의로 해석할지에 따라 곡이 완전히 달라져요. 요즘 서울시향과 연습을 하면서도 악기편성에 관한 구상이 매 순간 바뀔 정도니까요. 아마 무대 올라가는 순간 결정되겠죠.”
인터뷰 전날 요나스 카우프만의 공연을 봤다는 그는 이번 연주회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연습 마지막에 이 소리가 객석에서 어떻게 들릴지 상상하는데, 공연장 객석에서 듣는 소리가 어쿠스틱하면서도 황홀하더군요. 한국 관객들 반응도 팝스타 콘서트 못지 않게 열정적이고요. 하하” 1588-1210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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