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 한 달 밀라노엑스포서 곡선미 주목받은 한국관
관람객 목표치 훌쩍 넘어서… 한식 장수밥상, 인기에 큰 몫
벌집 구조 영국관 야경 일품
伊 거울방의 아름다움은 압도적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 있다. 로마의 콜로세움도,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도 아니다. 바로 밀라노 엑스포다. 지구인들이 한데 모여 각국의 전시를 둘러 보고, 세계 각 나라의 진귀한 음식을 먹으며, 춤추고, 노래한다. 지나치면서 주고 받는 환한 인사와 농담 속에서 느껴지는 ‘우리 모두는 같은 별에 살고 있다’는 새삼스런 연대감. 지금 밀라노는 ‘올레’와 ‘차오’가 인류를 하나로 묶어주는 지구 유일의 공간이다.
문화올림픽으로서의 엑스포
밀라노 엑스포 2015가 개막한 지 한 달여가 지났다. ‘지구의 먹거리, 생명의 에너지’를 주제로 전 세계 145개국이 참여해 10월 31일까지 6개월간 열리는 밀라노 엑스포는 이탈리아 현지 언론과 관람객들의 가열찬 평가 작업 덕분에 ‘되는 집’과 ‘안 되는 집’으로 확연하게 갈리는 분위기다. 흥하는 전시관에는 언제 가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고, 볼 것 없다고 소문난 전시관은 언제 들러봐도 썰렁하다. 선진국 전시관이라고 흥하는 것도, 개발도상국이라고 해서 외면 받는 것도 아니다. ‘역시’와 ‘뜻밖에’가 흥미롭게 교차한다는 것, 그게 바로 엑스포를 보는 재미다.
엑스포는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등록박람회와, 등록박람회 사이에 짧게 열리는 인정박람회로 나뉜다. 밀라노 엑스포는 2000년 독일 하노버, 2005년 일본, 2010년 중국 상하이에 이어 열리는 등록박람회. 우리나라의 대전과 여수에서 열렸던 엑스포는 인정박람회다. 세계만국박람회라는 이름으로 번역되곤 했던 엑스포는 본래 새로운 공업생산품과 제품들을 선보이기 위한 행사로 시작했지만, 최근 들어 지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과 그 문제들의 미래지향적 해결을 도모하는 성찰적인 전시회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 전시관도 웅장한 빌딩보다는 가벼움과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추세다. 십자가 모양의 밀라노 엑스포 전시장은 긴 세로축에는 각국 전시관들이 늘어서 있고, 짧은 가로축에는 이탈리아관과 이탈리아와 연관된 부수적 전시관들을 배치했다. 총 면적이 110만㎡나 되니 운동화는 필수다.
뜻밖의 강자 한국관… 두 마리 토끼를 잡다
한국관은 밀라노 엑스포의 복병이었다. 전시도 성황일 뿐 아니라 한식 레스토랑의 인기가 실로 대단했다. 주요 언론의 잇단 호평과 관람객들이 퍼뜨린 입소문으로 목표했던 일일 평균 관람객 1만870명을 크게 웃도는 1만2,914명이 매일 한국관을 방문했다. 5월 마지막 주는 일일 평균 1만4,728명이 찾아 1만명이 찾은 이탈리아관, 각각 4,000여명이 찾은 독일관, 일본관을 능가했다. 1~3일 둘러본 엑스포장에서 한국관 앞은 늘 길게 관람객이 줄을 서 있었다. 지난달 28일에는 이탈리아 총리 부인이 엑스포장을 깜짝 방문해 4곳을 둘러봤는데, 이탈리아관과 세이브 더 칠드런의 전시관, 미국관, 그리고 한국관이었다. 밀라노 엑스포 공식사이트의 10대 볼거리 중 하나, 이탈리아 최대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가 실시한 관람객이 뽑은 베스트 파빌리온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간장을 담아두는 용도로도 쓰였던 달항아리를 형상화한 한국관은 사실 흔히 보는 발전소 같은 모습이지만, 대부분의 전시관이 다채로운 색깔의 목재를 쓰고 있는 전시장에서는 온통 하얀 빛의 곡선이 눈에 띈다. 건축전문지 아치 데일리가 뽑은 엑스포 5대관에도 선정됐다. 밀라노에서 미식 투어 가이드로 일하는 클라우디오 코피씨는 “한국관은 놀랍도록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본뜬 곡선미와 유기적 건축이 눈길을 사로잡는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한국관 인기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CJ 비비고가 음식을 맡은 한식 레스토랑. 파스타와 비슷한 잡채와 쌈장 닭구이가 제공되는 장수 밥상이 가장 인기가 높다. 단품으로는 갈비와 비빔밥, 만두와 닭강정, 디저트로는 붕어빵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친구의 ‘강추’로 한국관을 찾아왔다는 시칠리아 출신의 파비오 칸나벨라씨는 “닭강정은 매우면서도 달콤한 맛이 나서 특이하고, 김밥은 여러 재료가 모여서 이루는 맛의 하모니가 훌륭하다”며 “중국, 일본, 태국 음식은 다 먹어봤지만 한국 음식은 잘 몰랐는데 먹어보니 아주 맛이 좋다”고 말했다.
과학과 예술과 자연의 완벽한 3중주… 영국관
‘벌의 여행’을 주제로 한 영국관은 추상적 관념을 구조물을 통해 가시화하는 탁월한 능력으로 놀라움을 자아낸다. 영국관에 입장하기 전에는 잠시 그레고르 잠자 식의 ‘변신’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전시관이 벌집을 형상화하고 있는 데다 전시를 벌의 시점에서 바라보도록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한 마리 벌이 되어 벌집 안으로 들어가면 17만개의 육각형 구조가 나선형으로 30m 높이까지 소용돌이치며 상승하는 알루미늄 벌집의 장관이 펼쳐진다. 각각의 작은 육각형 안에는 작은 전구가 설치돼 24시간 깜빡이고 있는데, 이는 영국 노팅엄에서 마틴 벤식 박사가 실제 벌들의 행동패턴을 연구해 이를 디지털 시그널로 변환, 전시관에 보낸 신호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영국관은 밤에 봐야 제 맛. 밤의 영국관 역시 밀라노 엑스포 10대 볼거리 중 하나로 뽑혔다.
나선형을 따라 한 층 위로 올라가면 벌의 시그널을 음으로 변환해 벌의 진동에 따라 다양한 음악을 연주하도록 했다. 윙윙거리는 벌의 노래와 클래식 배경 음악을 결합한 벌과 인간의 심포니다. 벌은 식물의 수분(受粉)을 가능케 하는 매개체로 생태계의 가장 중요한 생명체 가운데 하나다. 수분의 과정 없이는 어떤 열매도 가능하지 않으므로 벌은 우리가 먹는 음식의 창조주이기도 하다.
이 탁월한 개념적 전시는 혹시 영국 음식이 맛없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 아니었을까. 바로 옆의 스페인관은 올리브유 등 스페인 고유의 식재료와 미슐랭 3 스타를 받은 세계적 셰프들의 사진만으로 전시관을 가득 채웠던데. 이 무례한 질문에 새러 에버트 영국관 디렉터는 짐짓 화난 표정을 지으며, 당장 영국 음식들을 내오게 했다. 일동 폭소. 영국관의 음식은 2011년 윌리엄 왕세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식 리셉션 요리를 맡았던 세계적 셰프 모시만의 동명 식품업체가 맡고 있다. 2단 트레이에 담긴 영국 전통 애프터눈 티 세트에는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처음 만들었다는 쿠키도 들어 있었다.
에버트 디렉터는 “영국 음식에 대한 나쁜 평판은 세계대전 이전에만 유효하다. 종전 이후 세계 각국의 이민자들이 몰려들면서 영국, 특히 런던은 전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종류의 레스토랑이 모여 있는 곳이자 제이미 올리버, 고든 램지 등 세계적 스타 셰프들을 배출한 세계 음식문화의 중심이 됐다”고 말했다.
프랑스관, 이탈리아관, 우루과이 식당도 꼭
식문화의 강국 프랑스는 어느 도시를 가도 볼 수 있는 천장 덮인 전통 시장 콘셉트로 전시관을 꾸몄다. 공간의 상하를 뒤집어, 흐르듯 펼쳐지는 프랑스의 구릉을 천장으로, 바닥이 하늘이 되도록 만들었다. 물고기, 채소, 과일 등 1,300여종의 식재료를 매달아 프랑스 먹거리의 종 다양성을 표현했다. 프랑스 식문화의 상징인 전통 시장을 구경하는 듯한 재미가 쏠쏠하다. 식당은 3주마다 메뉴를 교체하는데, 폴 보퀴즈 요리학교 출신 셰프들이 만드는 정찬이 44유로, 간단한 단품 메뉴가 평균 20유로 정도다.
주최국 이탈리아의 전시관은 개막 이후에도 공사를 마무리하지 못해 구설에 올랐지만, 바닥과 천장이 거울로 된 거울방만은 꼭 봐야 한다. 천장과 바닥, 벽면이 모두 거울로 된 공간 안에 이탈리아의 자연 풍경과 건축물 등을 영상으로 비추는데, 무한 반사되는 이탈리아의 아름다움이 가히 압도적이다.
밀라노 엑스포는 안전 등을 이유로 식당에서 가스불 대신 전기열을 사용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 음식처럼 강한 화력이 필수적인 국가들의 레스토랑이 고전하고 있다. 여기서 우루과이의 호연지기에 주목할 것. ‘가스불이 없으면 장작불로’의 기개로 오픈 키친에서 나무를 태우고 그 위에 지글지글 고기를 올린다. 우루과이가 선보인 불내음 물씬 풍기는 두툼하고 넉넉한 스테이크는 밀라노엑스포의 명물로 화제가 되고 있다.
밀라노= 글ㆍ사진 박선영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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