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치러진 영국의 2015년 총선은 여론조사 예측과 다른 결과를 낳았다고 떠들썩하지만 향후 한국의 선거에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선거 전 여론조사는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 모두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의 접전을 예측했다. 그러나 선거당일 출구조사는 보수당의 압승을 예고했고 실제로 전체 650개 의석 가운데 보수당이 330석을 차지하여 232석에 그친 노동당과 56석을 확보한 스코틀랜드 국민당을 이겼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보수당으로 과반수 단독정부를 구성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이러한 선거결과는 먼저 영국의 선거제도에 영향을 입었다. 영국의 유권자는 1표를 행사하고 선거구마다 최다득표자 1인이 당선된다. 의원내각제의 탄생지이지만 영국은 다른 의원내각제 국가들이 실시하는 비례제를 채택하지 않았다. 영국은 오래 전부터 안정적인 정국운영을 유도하기 위하여 과반수 단독정부를 탄생시키는 단순다수 소선거구제를 실시해왔다. 이러한 제도는 표가 의석으로 전환되는 과정에 왜곡을 발생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불과 36.9%의 표를 얻은 보수당에게 무려 50.8%의 의석을 선사했다.
그 다음으로 이번 선거결과는 영국에서 진행되는 인구구조와 이념의 변동에도 영향을 받았다. 지난 해 초 이미 영국 정치학자들은 향후 선거에서 보수당의 승리 가능성이 더 크다고 전망했다. 1964년부터 2010년 사이의 설문자료를 분석해보면 1930년대, 50년대, 80년대에 투표를 시작한 세대들이 보수당 지지성향을 강하게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세대 유권자들이 각기 보수당 우위의 시대에 정치사회화를 경험한 이후 선거에서 꾸준히 보수당을 선택하고 있을뿐더러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도 보수화의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러한 장기적인 흐름에도 불구하고 이번 총선에서 노동당 당수 에드 밀리밴드는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좌파노선을 강조하는 한편 중산층은 물론 기업가의 마음을 사고 그들의 지지를 획득하는데 등한시했다. 마르크스주의 대표적인 이론가 가운데 하나였던 부친의 영향이었던 것인지 모르나 선거 직후 패배의 책임을 안고 자리에서 물러난 밀리밴드는 진보의 가치만을 강조하면서 과거 토니 블레어가 쌓아놓은 노동당의 자산마저 잃어버렸다. 1997년 총선에서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는 제3의 길을 주창하면서 중산층의 지지까지 확보하여 18년 보수당 집권을 끝냈던 바 있다. 그 후 10년 동안 블레어는 중산층뿐 아니라 기업가까지 포용함으로써 노동당 정부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번 총선에서 밀리밴드의 ‘노동당’에 맞서 캐머런의 보수당은 정통적인 지지기반인 중산층은 물론 ‘일하는 사람(working people)’까지 흡수하려는 전략을 구사했다. 보수당은 노동자의 윤택한 삶을 보장하겠다고 공약하면서 개인의 노력 대신 노조의 기득권과 복지 혜택에만 기대는 가짜 노동자 대신 진짜로 일하는 사람을 위하겠다는 접근법을 취했던 것이다. 과거 보수당이 위기 때마다 꺼내 들었던 중도화 전략의 2015년 버전이었다. 선거가 끝난 뒤 캐머런은 영국의 유명 사립 중고등학교와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출신으로 내각을 짜는 전통에서 다소 벗어났다. 캐머런은 광부 출신을 교통부장관으로, 이민자 출신을 고용부 장관과 기업혁신기술부 장관으로 각각 임명하면서 블루칼라 보수당을 만들고 있다는 평까지 듣는 중이다.
이제 한국에는 선거가 줄지어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물론 충청과 영남 대비 호남 유권자가 감소하는 등 인구구조도 급격히 변하고 이념의 보수화도 확산되는 중이다. 새누리당은 영국 보수당의 중도화 전략을 공부한 뒤 이미 2012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아직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도도한 한국사회의 변화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정당만이 승리라는 보상을 맛볼 것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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