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함태수의 백네트] 조범현에게 물었다, 좋은 포수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함태수의 백네트] 조범현에게 물었다, 좋은 포수란

입력
2015.06.09 10:20
0 0

▲ 조범현 kt 감독.

[한국스포츠경제 함태수] "아니, 그런 걸 물어보려면 맥주 한 잔은 사야지."

조범현(55) kt 감독에게 '좋은 볼배합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를 묻자 돌아온 답이다. 조 감독은 지난달 28일 잠실 LG전에서 왼손 선발 정대현(24ㆍkt)이 7이닝 2피안타 9탈삼진 무실점으로 시즌 첫 승에 성공하자 "정대현도 잘 던졌지만, 포수 장성우(25)의 리드가 좋았다"고 했다. 당시 정대현의 이닝과 탈삼진 수는 한 경기 개인 최다 기록. 둘은 3일 수원 SK전에서도 4-2 승리를 합작했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OB(현 두산) 포수 출신의 조범현 감독은 지도자로서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포수들로 꼽히는 박경완과 진갑용을 키웠다. SK 감독 시절에는 '포수 클리닉'이라는 책도 썼다. 그런 그가 장성우를 아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 팀의 10년은 책임질 포수"라는 극찬까지 했다. 그래서 물었다. 좋은 포수란 무엇인지를. 좋은 리드에 공식이 있는지를.

조 감독이 말하는 좋은 포수의 조건을 Q&A로 정리해 봤다. '맥주 한 잔을 사야' 꺼내 놓는 요점들, '몇 잔을 마시며 얘기해도 시간이 부족한' 그의 포수론이다. 단 여기서 메이저리그나 국내 외국인 투수들처럼 본인이 적극적으로 볼 배합을 하는 상황은 배제한다. 투수가 기본적으로 제구력이 좋고 그날 컨디션도 좋은 것으로 가정한다.

Q. 좋은 리드란 어떤 의미인가.

A. 한 마디로 '응용력'이 좋았다는 것이다. 타자와의 승부를 잘 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포수는 매 순간 민첩하게 움직이고 빠른 판단을 해야 한다. 타자들의 컨디션은 매일 다르기 마련이다. 3연전 중 1차전과 2차전, 3차전이 똑같을 리 없다. 지금 이 타자가 몸 쪽 공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바깥쪽 공에는 따라오고 있는지, 직구를 당겨 쳤는지 밀어 쳤는지, 그 때 그 때 판단해 볼 배합을 해야 한다. 앞선 경기에서의 타자 기록도 충분히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원정 기록원이 항상 분석된 자료를 보내오는데 직구와 변화구를 어떻게 쳤는가, 타구는 어느 쪽으로 날아갔는가 등을 머릿속에 넣고 있어야 한다. 포수는 타자의 스윙 궤도, 스탠스, 그립 모양, 배트 스피드뿐 아니라 바람 방향, 구장 크기까지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Q. 타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포수의 습관까지 분석하고 들어온다고 하는데.

A. 당연하다. 타자라고 당하고만 있겠는가. 그래서 끊임 없는 머리 싸움이 필요하다. 무조건 어디로 던져야 범타가 된다는 공식은 없다. 볼 배합에는 정답이 없다.

▲ 박경완(왼쪽)의 은퇴식.

Q. 박경완은 현역 시절 타자들이 노리는 공은 절대 안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A. 쉽지 않다. 포수는 타자의 마음을 읽어야 하는 존재다. 타자의 마음을 어떻게 읽느냐고? 그래도 읽어내야 한다.

Q. 투수가 불리한 볼카운트에서는 대체적으로 어떤 공을 요구해야 하나.

A. 어떤 타자라도 유리한 볼카운트에서는 타율이 3할을 넘긴다. 초구, 1볼, 2볼, 2볼-1스트라이크, 3볼-1스트라이크라고 생각해 봐라. 누구나 잘 친다. 이럴 때 일반적으로 던져야 하는 존(통상적으로 낮은 코스, 좌우 꽉 찬 코스)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이마저도 타자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다. 타자마다 약점이 있기 때문에 그에 맞는 코스로 요구해야 한다. 그래서 분석이 중요하다.

Q. 포수로선 억울한 게, 0볼-2스트라이크의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공격적으로 들어갔다가 맞으면 비난을 받고 반대로 스탠딩 삼진을 잡으면 찬사를 받는다. 빠른 승부와 신중한 승부를 해야 할 때가 있는 건가.

A. 2스트라이크에서 던질 수 있는 공이 무엇인가. 승부구, 유인구, 위협구 정도가 되겠다. 만약 이 때 직구를 몸 쪽으로 찔러 넣다가 한 방 맞았다고 가정하자. 그럴 때 보통 포수를 불러다가 "왜 그걸 요구했느냐"고 호통을 치곤 한다. "카운트가 이렇게 유리한데 왜 신중하지 못했느냐"고 야단치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목적'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다. 자, 포수에게 "왜 그 공을 던지게 했냐"고 물었다. 포수의 대답은 "바로 승부 들어갔습니다"였다. 그럼 된 거다. 나도 OK다. 공 1개 1개에는 목적이 있어야 하고, 포수 사인에 목적이 있었다면 된 것이다.

Q. 그 목적이 맞아 떨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A. 역시 타자의 성향이 중요하다. 이 타자가 김현수(두산)처럼 초구부터 자신 있게 방망이를 내는지, 2구째부터 움직이는지 알아야 한다. 주자 유무 상황, 스코어도 중요하다. 이 모든 걸 파악한 다음 초구를 유인구로 할지, 승부구를 던질지, 카운트를 잡기 위한 공으로 갈지 선택한다. 예컨대, 경기 후반 우리 팀이 7-0으로 앞서고 있다. 타석에는 김현수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초구부터 승부다. 유인구를 던질 필요가 없다. 반면 박빙인 상황에서 김현수다. 이럴 때 초구는? 당연히 신중해야 한다.

▲ 삼성 진갑용(오른쪽)과 임창용.

Q. 초구가 역시 중요하다.

A. 초구는 생명선이다. 투수와 타자에게 모두.

Q. 막 프로에 뛰어든 포수가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갖추려면 얼마나 걸릴까.

A. 경기 출장을 많이 한다고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2년 정도 철저히 하면 기본기는 생기지 않나 싶다. 물론 결과에 대한 복기를 하고, 내가 이 상황에서 왜 이렇게 했을까 공부하는 것이 필수다. 그런데 그렇다고 다 늘지는 않는다.

Q. 포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꼽는다면.

A. 다른 야수들은 홈런 1개만 치면 아주 기쁘다. 포수는 그렇지 않다. 병살타가 필요한 순간, 병살타를 유도해 내면 그것만큼 희열은 없다. 자신의 생각대로 상황이 만들어지면 더 없이 기쁘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역산'이다. (병살타가 필요하다면) 5구째에서 승부를 본다고 결정하고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4구를 어떻게 갈지, 3구는 무엇을 요구할지, 2구에 어떤 볼 배합을 할지, 초구는 어떤 구종과 코스로 선택할지 다 머리에 넣고 있어야 한다. 계획을 짜 놓고 있어야 한다.

함태수 기자 hts7@sporbiz.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