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시대 小國 조문국 지역
6세기초 경주서 반짝 유행 형태
신라 중앙정부의 하사품 추정
6세기 신라의 대표적인 황금 귀걸이 유물이 경주에서 수십 ㎞ 떨어진 경북 의성군에서 발굴됐다. 중앙집권이 완전하지 않던 신라시대 경주의 왕권이 점차 지방 정부로 확장돼 나아갔음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성림문화재연구원은 8일 경북 의성군 금성산 근처에 있는 삼국시대의 대규모 고분군 중 하나인 대리리 45호 고분에서 경주시 천마총에서 발견된 귀걸이와 형태가 유사한 황금 귀걸이가 출토됐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경주 외 지역에서 출토된 금귀걸이 유물 중 가장 화려한 것이다. 중간고리에 1㎜ 크기의 금알갱이를 붙여 화려한 무늬를 꾸미고 끝부분은 추 형태의 장식으로 마무리한 이 귀걸이는 신라 수도인 경주 지역에서 6세기 전반 유행했던 형태다. 특히 금관과 금귀걸이, 허리띠와 금동신발 등 황금 장신구는 신라의 왕권을 상징하는 것인데, 왕족의 장신구를 의성의 수장층이 공유했음을 알려준다.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금 알갱이를 잔뜩 붙이고 금판을 접어 장식한 신라 세환이식(細環耳飾)으로, 6세기 전반 짧은 시기에 제작돼 유통되던 것”이라며 “경주의 왕족이 의성의 지역 지배층에 금귀걸이를 하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제 귀걸이가 발견된 경북 의성군은 삼한(三韓)시대 소국인 조문국(召文國)이 있었던 곳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는 185년 벌휴 이사금 때 조문국을 복속시켰지만 지금까지 발굴된 유물을 보면 조문국의 지배층들은 이후로도 독자적인 자치권을 행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는 6세기 중엽에야 지방관을 파견해 각 지역을 직접 통치했다. 특히 5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신라 중앙정부는 지방 수장에게 금속제 장신구를 하사했다. 즉 의성의 대규모 무덤군과 그 안에서 발굴되는 장신구들은 지역을 지배했던 유력자들이 신라 중앙으로부터 부여 받은 권위의 상징이다.
발굴 고분은 흙을 크게 쌓아 만든 신라의 전형적인 대형 봉토분으로 내부에서 무덤주인을 담은 주곽(主槨)과 함께 나란히 배치된 부곽(副槨)에서 귀걸이, 허리띠 장식 2벌, 굽 높은 접시, 짧은 굽다리 접시, 목이 굵고 긴 항아리 등 토기류와 다양한 형태의 말갖춤용품들이 나왔다. 김동숙 성림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실장은 “고분의 주인이 이 지역의 상위 계층이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신라가 의성 지역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며“의성 일대는 신라에서도 지방세력이 가장 컸던 곳이자 신라에서 북쪽으로 진출할 때 반드시 지나가는 경상북도의 중심 거점으로 5세기까지 고구려와 신라의 충돌이 빈번했던 지역이었기에 특별한 관심을 두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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