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재고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목희 의원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며 14일 예정된 방미 연기를 요구했고,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도 “이 국면에 최고지도자가 외국 순방길에 나서는 건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새누리당에서조차 방미 연기 불가피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가 간 최고 외교행위인 정상회담을 불과 며칠 앞두고 연기하는 것은 분명 부담이 크다. 더구나 상대가 우리의 혈맹이자 외교안보의 가장 큰 이해당사자인 미국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온 나라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으로 패닉 상태에 빠져있는 지금은 한미 간 정상회담이라 하더라도 국민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책임져야 할 대통령의 외국방문은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
지금 대한민국은 메르스 공포로 사실상 올스톱 상태다. 학교에는 휴업령이 내려지고, 환자는 감염이 두려워 병원에 가는 것조차 꺼리고 있다. 백화점이나 극장, 음식점 등은 개점휴업이다. 외국 정부는 자국민들에게 한국방문 자제를 권고하고, 한국과의 인적교류를 거부하는 등 ‘한국 기피’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메르스에 대한 정부의 안이한 인식과 거듭된 실책으로 국민의 불신은 이미 극에 달해 있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이 지금 올인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더 이상 메르스가 확산되지 않도록 팔을 걷어붙여 당국자들을 독려하고, 괴담이 번지는 것을 차단해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것이다. 더구나 앞으로 수일 간은 메르스 사태가 병원 내 감염에서 지역사회 감염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확산될 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다. 총리도 없는 마당에 대통령마저 정상회담을 이유로 비상상황을 피해간다면 국민은 물론이고 국제사회에서도 우리의 대처능력과 의지를 의심받을 수 밖에 없다.
지금 SNS에서는 박 대통령의 미국방문과 관련해 차마 입에 담기도 민망한 욕설과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박 대통령에 대한 불신이 심각한 수위에 달해있음을 청와대는 직시해야 한다. 그렇잖아도 이번 회담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도입, 한일 과거사 문제, 대북제재 강화, 남중국해 사태 등 우리에게 불편한 현안 일색이어서 ‘누구를 위한 정상회담이냐’는 말이 일찌감치 나돌던 터다.
박 대통령은 지금 상황에서 자리를 비우는 것이 국민에게 어떤 메시지로 비칠 것인지를 고민하기 바란다. 지금은 대통령이 솔선수범해 난국을 돌파하겠다는 의지와 진정성, 신뢰회복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할 때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