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서 집권당 과반의석 확보 실패
쿠르드계 지지 HDP 79석 돌풍
야당 연정 거부에 조기 총선 가능성도
대통령 중심제 개헌 강력 주장… 에르도안 대통령 입지 흔들릴 듯
7일 치러진 터키 총선에서 집권 정의개발당(AKP)이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해 13년 장기 집권해 온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입지가 크게 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2002년 이후 처음으로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하는 터키 정부와 에르도안 대통령이 강력하게 주장해 온 대통령 중심제 개헌의 향방도 주목된다.
터키 반관영 아나돌루통신은 7일 총선 개표 결과 AKP 득표율이 40.8%를 기록, 전체 의석 550석 가운데 과반(276)석에 못 미치는 258석을 얻게 됐다고 보도했다. 이어 케말리즘을 추종하는 공화인민당(CHP) 25.1%, 우파인 민족주의행동당(MHP) 16.4%, 쿠르드계 정당 인민민주당(HDP) 13% 등으로 집계됐다.
이로써 2002년 총선에서 압승한 이후 줄곧 단독정부로 집권한 AKP는 연립정부 구성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러나 3개 야당이 모두 AKP와 연정을 거부해 상황에 따라서는 조기 총선을 치를 가능성도 있다.
사실상 대통령 중심제 도입에 대한 국민투표 성격을 띠었던 이번 총선에서 AKP가 개헌에 필요한 의석수를 얻지 못하면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준 대통령제’ 체제에서 여당과 지속적인 마찰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터키는 2007년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했으나 총리가 정부 수반인 의원내각제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사상 첫 직선제 대선에서 승리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새로운 터키’를 이룩하기 위해 대통령제 개헌이 필요하다고 역설해 왔고, AKP는 총선 공약으로 이를 내걸기도 했다.
터키 언론들은 AKP의 과반수 실패 이유로 지난 2013년 전국적 반정부 시위와 사상 최대 부패사건, 에르도안 대통령의 권위적 통치, 경제성장률 둔화, 실업률 증가 등을 꼽았다. 특히 쿠르드계의 지지로 79석을 확보한 HDP의 돌풍이 AKP의 입지를 흔든 결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터키 전체 인구의 약 20%(약 1,800만명)인 쿠르드족을 등에 업은 HDP는 소수인종뿐만 아니라 여성, 동성애자 등의 인권 증진을 주장하며 표심을 얻었다. 비례대표제와 최저득표율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터키에서 만일 HDP의 득표율이 10%에 못미쳤다면 AKP가 추가로 60석을 배정받아 과반의석을 거뜬히 얻을 수 있었다.
과반수 실패로 오스만 제국 당시의 영광을 재현하자며 서방과 긴장관계를 형성해 온 에르도안 대통령의 외교정책도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유럽연합(EU) 가입 협상에서 “터키는 유럽이 필요 없다”는 논리를 펼친 데다 수니파 과격단체인 이슬람국가(IS)를 지원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으며 유럽과 미국 등 서방과 마찰을 빚어왔다.
젠서 오즈칸 터키 빌기대 국제학과 교수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선거의 문턱을 넘은 유권자들은 이제 더욱 공개적으로 민주주의 확대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