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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정신감정 증가 뒤, 변호사 영업전략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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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정신감정 증가 뒤, 변호사 영업전략 있다

입력
2015.06.08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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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유발하는 정신질환 증가 더해

의뢰인 유치 경쟁 치열한 변호사들

심신미약 판명으로 감형 노린 탓도

"치료감호소 보내도 절반 성공 인식"

‘도곡동 재력가 할머니 살해사건’ 피고인 정모(60)씨의 변호인은 첫 공판 준비기일이었던 4월 중순 재판부에 정씨의 정신감정 의뢰를 신청했다. 그는 올해 2월 서울 도곡동 자택에서 재력가 함모(86ㆍ여)씨의 양팔을 운동화 끈으로 묶은 채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변호인은 “당뇨치료에 좋은 식품을 구하기 위해 함씨를 찾았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제정신이 아닐 때 제3자가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는 취지다. 재판부는 평소 정씨가 간질발작 등으로 쉽게 정신을 잃었다는 진료기록, 구치소 수용자 진료기록부에 ‘우울증과 불안장애 등 정신질환이 있다’는 문구 등을 토대로 변호인 요구를 수용했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서초동 세 모녀 살해사건’의 피고인 강모(48)씨와 ‘타워팰리스 살인사건’의 피고인 이모(51ㆍ여)씨 역시 “정상적인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이 아니다”며 정신감정을 요청했고, 재판부는 받아들였다. 강씨는 올해 1월 아내와 두 딸을, 이씨는 지난해 10월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각각 기소됐다.

최근 주요 형사사건의 정신감정 요청 건수가 꾸준히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감정은 재판관이나 수사기관이 피고인의 책임능력이나 행위ㆍ증언능력 등을 판단할 목적으로 정신장애 유무 및 정도를 진단하는 제도를 말한다. 감정 결과에 따라 심신장애로 판명될 경우 형법 제10조 1항에 의거해 처벌을 면하거나 감형될 수 있다. 일단 사회 다변화에 따른 정신질환 증가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지만, 경쟁이 치열해진 변호사 업계에서 사건 수임을 위해 영업전략의 변화를 꾀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8일 법무부에 따르면 최근 20년간 국립법무병원(공주치료감호소)에 정신감정을 요청한 건수는 1995년 205건에서 지난해 604건으로 3배 가량 증가했다. 해마다 미미한 증감 폭은 있지만 5년 단위 통계를 보면 ▦1995~1999년 1,498건 ▦2000~2004년 1,632건 ▦2005~2009년 2,114건 ▦2010~2014년 3,215건으로 지속적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최근 5년간 정신감정을 받은 피고인 중 징역형 대신 치료감호처분을 받은 이들도 1,101명(34.2%)에 이른다. 도곡동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 수서경찰서 관계자는 “과거에는 반성하는 태도를 보여 감형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요즘 들어선 범행 자체를 인정하지 않거나 인정하더라도 ‘심신미약(신경쇠약ㆍ알코올 중독 등으로 의사결정 능력이 미약해진 상태)’을 주장하는 피고인이 급증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심화하는 사회 양극화와 경제적 어려움 등이 맞물려 생긴 정신적 스트레스가 범죄를 유발하면서 빚어진 현상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법무법인 예율의 김웅 변호사는 “갈수록 다층적인 외부 요인이 개인을 억누르는 탓에 술과 약물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증가했고,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도 함께 늘어 정신감정을 요청해볼 여지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욱환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도 “사회구성원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져 정신감정이 필요한 사건의 발생 수 자체가 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신감정 의뢰 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변호사의 영업 전략을 원인으로 꼽는 시각도 있다. 변호사 2만명 시대를 맞아 의뢰인 유치가 힘들어진 변호사들이 정신감정을 내세워 틈새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변호사들이 범죄 혐의가 명확한 사건인 경우 심신미약을 주장해 감형을 이끌어내거나 교도소(징역형)가 아닌 치료감호 처분을 받아볼 수 있다며 피고인을 설득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실제 지난해 정신감정을 의뢰한 주체를 보면 법원 단계(변호인이 재판부에 신청서를 제출하거나 재판부 직권으로 감정 결정)의 요청건수가 508건으로 검찰ㆍ경찰이 감정을 의뢰한 사례(96건)보다 훨씬 많았다.

대전에서 활동 중인 한 변호사는 “변론 전략을 세울 때 의뢰인의 병원진료기록, 알코올ㆍ약물 의존도 등을 면밀히 분석한다”며 “얼마 전만 해도 강력범죄 변호는 성공 여부를 가르는 기준점이 집행유예였으나, 최근에는 치료감호소만 보내도 ‘반은 성공’이라는 인식이 통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주희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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