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잘 나갔던 한국일보가 1954년 6월 9일 창간했다. 젊은 신문을 표방하며 창간 첫 해 학력 불문 기자 공채 등 혁신적인 시도로 한국 언론 전문화를 선도했고, 최초의 스포츠신문 경제신문 어린이신문 등을 잇달아 창간했다. 언론사 첫 노동조합도 한국일보에서 탄생했다.
‘한 때’란 건 지금은 아니라는 얘기다. 위키피디아 한국어판은 몇 차례 사세 추락의 사연을 소개한 뒤 “이후에도 4대 신문 또는 4대 일간지로 불렸으나 현재는 조중동과 격차가 크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2013년 6월 15일 ‘한국일보 사태’가 터졌다. 노조가 대주주를 배임 횡령 혐의로 고발하자 대주주가 용역업체 직원을 고용해 편집국을 폐쇄한 사건이다. 법원 판결로 편집국은 58일 만에 정상화됐고, 대주주는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 횡령 혐의로 3년 형을 받았다. 경영난이 악화하면서 한국일보 사원들은 회사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동화기업이 인수해 지난 1월 29일 회생 절차를 마무리했다. 편집국 폐쇄도, 사원 신청 법정관리도 각각 한국 언론사와 사법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한국일보는 ‘자유분방한’ 언론으로 평가 받아왔다. 보수ㆍ진보 성향의 드센 기자들이 폭넓게 공존하며,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기사를 써왔기 때문이다. 그 분방함은 장점도 되고 단점도 된다. 권력의 든든한 지원도, 열정적인 독자층도 기대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경영 면에선 확실히 불리하다. 독자들도 때로는 조롱의 의미로 저 말을 써왔다. 하지만 다수의 한국일보 기자들은, 내부의 논란이 없진 않지만, 그 자유주의적 사풍을 소중히 여긴다. 그들은 집단의 세(勢)가 아니라 저마다의 소신으로 일하며, 그 정신을 집단의 가치로 공유한다.
그들은 50년대 저 고루하던 시절서부터 상급자의 호칭에서 ‘님’자를 버렸다. 회장도 편집국장도, 지금도 그냥 ‘회장’이고 ‘국장’이다. 쫄지 않겠다는 각오와, 쫄지 말라는 격려가 거기 있다. 그들이 의지를 모아 2015년 6월 9일 ‘제2 창간’을 선언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한국일보 숭례문 시대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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