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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현재 권력, 미래 권력

입력
2015.06.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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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메르스 대책마련을 위한 여야 4+4회담에서 회담 시작에 앞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문재인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날회의에는 이명수 메르스 비상대책 위원장, 원유철 정책위의장, 유승민 원내대표, 김무성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이종걸 원내대표, 추미애 메르스 대책특위 위원장, 강기정 정책위의장 등이 참석했다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7일 오전 메르스 대책마련을 위한 여야 4+4회담에서 회담 시작에 앞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문재인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날회의에는 이명수 메르스 비상대책 위원장, 원유철 정책위의장, 유승민 원내대표, 김무성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이종걸 원내대표, 추미애 메르스 대책특위 위원장, 강기정 정책위의장 등이 참석했다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정치권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메르스 공포가 전국을 뒤덮어 한국 사회가 사실상 마비된 가운데 유독 정치권 움직임은 부산하다. 차기 대권 주자군에 포함된 여야 잠룡들의 행보가 더욱 그러하다. 정부의 초동 대응 실패로 방역망에 구멍이 뚫리자 여야 지도부는 물론 개별 지자체장들도 콘트롤 타워를 자처하고 나섰다. 대통령 주도하에 여야와 민관군경이 똘똘 뭉쳐 국가 비상사태를 헤쳐나가자는 주문이 쇄도하지만 현재 권력에 도전하는 미래 권력 내지는 정치세력의 속성에 비춰보면 지향하는 바가 다 같을 수는 없다.

방역주권을 둘러싼 정부와 서울시의 충돌은 진작부터 정치적 구도 속에서 해석됐다. 야권의 유력 주자인 박원순 서울시장 입장에서는 정부의 방역 시스템 공백을 감각적으로 파고 든 셈이다. 복지부가 박 시장의 요구를 받아들여 중앙ㆍ지방정부의 협조 시스템을 구축키로 하면서 박 시장의 존재감은 더욱 부각됐다. 지방 정부와 중앙 정부가 일합을 겨룬 보기 드문 사건에서 박 시장은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아 보인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남경필 경기지사가 손을 잡고 메르스 공조체제를 구축한 것 또한 현재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눈여겨볼 만하다. 문 대표는 김상곤 혁신위원장에게 새정치연합 내홍을 진압할 소방수 역할을 맡긴 뒤 첫 행보로 남 지사와 ‘메르스 연정’에 나섰다. 야권 주자인 문 대표가 정부를 몰아세우는 것이야 정치공세의 일환으로 볼 수 있지만 새누리당 소속인 남 지사의 행보는 예사롭지 않다. 남 지사가 문 대표와 만난 직후 여야 지도부의 7일 메르스 회동을 중개했다는 대목에서는 여야를 넘나들며 현재 권력을 견제하는 남 지사의 정치력이 돋보인다.

메르스 발생 직전으로 시계를 돌리면 여권 내부에서 벌어지는 현재 권력과 미래 정치세력의 대결 구도가 확연하다. 여야가 공무원연금 개혁안 합의와 함께 이른바 ‘법 위의 시행령’ 문제를 조율한 결과로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분란이 벌어졌다. 청와대가 개정 국회법이 헌법에 위배되거나 삼권분립 원칙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여권 투톱인 김무성ㆍ유승민 조를 무차별 공격했지만, 이 또한 여권의 미래 정치세력을 장악하려는 현재 권력의 의중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문재인 박원순 등으로 차기 주자군이 단순한 야권과 달리 여권은 내부 사정이 복잡하다.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가 여당 지도부를 형성하고 있긴 하지만 여권 전체를 아울러 유력한 차기 주자는 아직 윤곽이 뚜렷하지 않다. 미래 권력 내지는 정치세력이 불분명한 상태라서 현재 권력이 상대적으로 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개정 국회법에 대한 청와대의 반발에 “정부 여당이 다를 수 없다”고 한 발 물러선 김무성 대표나 “나중에 다 밝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입을 다물고 있는 유승민 원내대표 모두 아직은 현재 권력을 상대할 역량이 부족한 상태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달랐다. 현재 권력이던 이명박 대통령에게 맞서 세종시 원안을 끝까지 고수해 냈다. 이명박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들고 나온 게 집권 3년 차인 2010년이고 보면 현재 상황에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저항이었다. 하지만 당시 박 대통령이 여권 차기 주자로서 점했던 정치적 중량감을 감안하면 비교 자체가 무망한 일이다.

세종시 수정안 사태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현재 권력은 미래 권력을 장악하고 정권을 연장하려는 속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현대 정치사에서 동서를 막론하고 현재 권력이 미래 권력을 지목하거나 그대로 승계했다는 민주국가의 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 박근혜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긴장관계가 대표적인 경우다. 현재 권력이 통제하거나 제어하려 들면 미래 정치세력은 반발할 수밖에 없고 현재 권력의 틀을 깨지 않고 탄생하는 미래 권력이란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김무성과 유승민이라는 정치인을 압박하면 할수록 여권의 미래 정치지형은 더욱 단단해지는 게 아닐까. 이 경우 야권은 그만큼 불리해 질 수밖에 없지만….

김정곤 정치부장 jk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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